나이의 앞자리가 3이 넘어가며
‘연애의 종착지는 결혼인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30대가 되어 사귄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때마다 ‘난 결혼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아닌 쪽이지만 바뀔 수도 있고’라는 대답이었다. 결혼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고, 막연히 이게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내 애매한 입장이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에 빠졌다.
먼저 연애를 하면서 상대의 행동이 거슬렸다. 최근에 만난 남자는 도로 옆 인도를 걸을 때, 어깨를 감싸거나 자신이 도로 쪽으로 걷도록 나와 위치를 바꾸곤 했다. 그걸 어떤 사람은 배려라고 보겠지만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여자는 보호해야 한다. 연약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여서다.
데이트 과정에서 여자, 남자의 행동 차이를 계속 의식했다. 그 사람이 나보다 연봉이 높고 차도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대부분 나를 데리러 왔고 데이트 비용도 더 많이 부담했다. 남녀를 떠나 물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 베풀 수 있지만
왜 대부분 그쪽이 남자인 건지 부당하게 느껴졌다.
남자를 만날 때, 날 데리러 오고 좋은 곳에 가는 건 편했지만 내 머리는 복잡했다. 결국 계속된 호의는 상대방에게 어떤 형태의 보상이든 바랄 것이고 나는 갚아야 할 것이 점점 커지는 부채감이 들었다. 나는 공정과 평등을 중시하면서도 내게 이득이 될 때는 선뜻 받는 것이 모순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정확히 더치페이하고 남자를 찾아가서 만나는 등 모든 것이 반으로 나누기엔 왠지 억울한 느낌이었다.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며 혼란스러움을 자주 느꼈다.
결혼에 거부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소중한 나를 잃고 싶지 않아서다. 일의 전문성, 성장하고 배우는 것이 나의 정체성에 매우 중요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잘하고 좋아하는 전공을 찾고 최적화된 생활 패턴을 만들었다. 반면에 결혼과 출산은 내 시간과 에너지 대부분을 가정에 쏟게 만든다.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남편, 시댁 등 내 생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난 또 그렇게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아니라 그 압력에 휩쓸려 내가 잠식될 듯한 두려움을 느낀다. 결혼은 평온한 내 삶을 뒤흔들 너무도 거대한 변수다. 내가 지금껏 쌓아오고 지켜온 것들을 잃을까 무섭다.
나는 육아휴직 및 육아시간 사용이 자유로운 직장에서 일함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집안일은 보상이 없고 여자에게 더 많이 강요된다. 가정에서 여자의 집안일을 기본값으로 당연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일하는 시간엔 또 다른 여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돌봄, 서비스 업종에 여성의 비율이 높고, 남녀임금 격차가 크다는 것이 자꾸 떠오르며 괴롭다. 내가 이런 불평등한 체계를 반복한다는 상상조차도 불쾌하다.
또한, 가정에서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밖으로만 돌고 전혀 가정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하고 회피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아빠와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 어쩌면 나는 ‘남자는 자기만 안다.’ 고 생각하며 남자를 신뢰하기 어려운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자에 대한 기본적 이미지가 좋지 않고 믿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그동안 ‘왜 이렇게 연애가 불편하고,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며 머릿속이 정리된다. 나의 가치관, 성향, 경험이 다양하게 상호작용하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 편안함과 행복을 놓칠까봐 겁나는 마음에 결혼, 육아가 거북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생각이 바뀌는 것에도 열려있고 싶다. 이렇게 내 안에 서로 충돌, 상충하는 면을 발견하며 흥미롭다. 결혼과 출산의 형태가 아니라 해도 나만의 선한 영향력으로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과정에 계속 사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소박한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