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래도의 나를 뽐낼 수 있는 무언가
“넌 친구가 있긴 하니?”
학창시절, 중학교 선생님이 던진 이 말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함께 급식을 먹는 친구는 있었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정곡을 찔린 말이었기에 더욱 아팠고, 그 말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물음표로 남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엔 큰 관심이 없었다. 자연스레 또래들과 섞이지 못했고,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늘 따라다녔다. 혼자 되는 게 두려워 친구들 말에 맞장구를 치고, 알아듣지 못해도 웃는 게 습관처럼 굳어졌다. 겉으로는 친구가 있었지만, 대화는 재미없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면 재미없어할까 봐 늘 숨기기만 했다.
그런 나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처음 준 건, 중학교 배드민턴 동아리였다.
체육 시간에 배드민턴을 치다 선생님의 눈에 들어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점심시간과 방과 후마다 배드민턴을 치며 지냈다. 그곳에서 나는 온전히 함께하는 즐거움을 처음으로 느꼈다. 셔틀콕 하나에 집중하며 온 힘과 기술을 쏟아 라켓을 휘두를 때의 쾌감은 짜릿했다. 공의 움직임에 따라 감정이 출렁이는, 마치 파도 위에서 서핑을 타는 느낌이었다. 배드민턴부 친구들과는 말이 많지 않아도 공으로 충분히 대화할 수 있었다. 호흡이 맞고 몸짓이 이어질 때 웃음이 터졌고, 거기서는 나를 꾸미거나 숨길 필요가 없었다. 라켓을 내리치는 속도와 강도, 몸의 정교한 움직임 속에 나는 나 자신이 되었다. 다른 관계에서는 진지한 내 모습이 부담이었지만, 배드민턴은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격려해 주었다. 그 자유로움이 감동이었고, 나는 오래도록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정신없이 흘러간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나는 또 하나의 ‘배드민턴’을 만났다.
바로 독서모임이었다.
몇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형식이었는데,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도, 말하는 것도 어색했다. 하지만 그 모임에서 기쁨을 느끼게 해준 건,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의견이 달라도 “그럴 수 있지” 하며 존중해주는 분위기, 나를 향한 반짝이는 눈빛이 깊은 몰입감을 주었다. 마치 지지직거리던 라디오의 주파수가 맞아 맑은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처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전엔 대화가 지루하고 억지로 맞춰주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대화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나는 진지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니라, 즐거움을 느끼는 지점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재미와 특별함을 찾았다. 더 이상 애써 맞추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빛날 수 있는 공간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적당한 잡담도 좋지만, 나는 주제가 있는 깊은 대화를 즐기고, 서로 다른 시각으로 삶과 세상을 이야기 나누는 순간에 더 큰 기쁨을 느낀다. 예전에는 비슷한 또래가 편했지만, 지금은 나이와 상관없이 배우는 점이 있고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소중하다. 존중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장소와 사람을 찾는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배드민턴’을 찾아 나선 지금, 나는 훨씬 더 행복하다. 지금은 주로 독서, 운동, 일과 관련된 공부 모임을 즐기며, 제2의 배드민턴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있다.
당신의 ‘배드민턴’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