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그리고 같이 살자.

by 느린토끼

‘누구와 살고 싶어?’란 질문에

요즘 나의 대답은 ‘혼자’다.


어둠 속의 적막이 얼마나 쓸쓸할지, 내가 내 밥을 잘 챙겨줄지, 얼마나 청결하게 지낼지 궁금해서다. 그러나 ‘꼭 혼자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간섭 없는 적당한 거리’가 있다면 같이도 좋다.


같이 산다면 누구와 살지 상상해본다. 먼저 가족을 생각했다.


난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거의 없고 언니, 엄마랑 살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최근 언니에게 연인이 생기며 매일 같이 만나 집에 붙어있는 날이 없다. “오늘도 나가?” 하며 놀라는 소리만 있을 뿐이다. 언니는 결혼할지 모른다. 같이 살 계획에 차질이 생긴 듯하다. 한편 하루가 다르게 엄마의 야윈 허벅지와 볼품없는 엉덩이를 보노라면 애처롭고 쓸쓸하다. 엄마는 혼자 살면 뻥튀기로 대충 밥을 때우고 한자리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선했다.


그렇지만 안쓰럽다고 해서 엄마와 함께 살고 싶진 않다.

근처에 살며 가끔 왕래하는 정도로 내 역할은 충분하다.


꼭 가족이 아니라도 함께 사는 방법은 수만 가지다. 그중 ‘셰어하우스’다.

주택이나 아파트를 리모델링하고 마치 하숙 내놓듯이 남들과 사는 것이다. 시간이 맞으면 함께 식사도 하고 거실에서 이야기 나누며 원할 때 교류하지만 내 방으로 오면 나만의 공간이 확보된다. 같이 살면 불편한 점, 규칙이 필요하겠지만 맞춰나간다면 재미도 두 배일 것이다.


내가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게 된다면 ‘자립 준비 청년’과 살아보고 싶다. 그들은 아동보호시설에서 살다 만 18살이 되어 독립한 사람이다. 18살은 오롯이 혼자 힘으로 살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다. 한 지붕 아래 산다면 먼저 세상을 경험한 어른으로서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도 주고 싶다. 가족의 지원은 받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주변에 기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든든함을 느꼈으면 한다.


혼자 사는 어르신도 좋은 룸메이트가 될지 모른다. 시신이 한참 부패한 뒤에 발견됐다는 고독사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 마음이 저려온다. 빈곤보다 더 아픈 것은 외로움이다. 함께 사는 주거 형태가 많은 부분 대안이 될 것이다. 사업과 수익모델로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게 아닌 최소한의 식비, 공과금 등 운영에 필요한 비용만 받고 누군가에게 이바지하는 방식으로 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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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공간을 나누는 일은 단순한 주거의 문제가 아니다.

돌봄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위탁가정도 여건이 된다면 해보고 싶다. ‘위탁가정’은 부모가 아동을 양육할 수 없을 때, 원래 가정으로 복귀할 때까지 일정 기간 아동을 양육해주는 제도다. 상담을 업으로 삼다 보니 내가 가진 전문성과 경험을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를 돌보는 것에 활용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독립성’이 보장되지만 언제든 누군가와 ‘교류’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다. 가족은 너무 가깝고 아파트 주민들은 너무 멀다. 또 내 것이라고 품고만 있는 것이 아닌 ‘공유’하고 싶다. 쥐고 있기보단 나눌 때 풍성해진다. 다양한 형태로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살고 싶고 그게 내겐 다채로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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