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은 흐른다

by 느린토끼

누군가 할퀸 상처

따끔따끔 아려온다

정신이 혼미하다


타박타박 걷다 보면

사부작사부작 가다 보면

살랑살랑 부는 바람

나부끼는 억새 향연


시선이 멈춘다


시선이 흐른다


억새는

나를 보세요

여기 있어요

속삭인다


그저, 바라보다


잠시 상처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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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끝없이 꼬리를 무는 생각은 시린 상처처럼 ‘나 여기 있어요.’라고 상기시킨다.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자전거 페달을 굴리다가도, 뇌에 껌딱지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는 고민으로 푹 꺼질 듯 한숨을 쉰다. 본래가 민감함을 타고난 나의 숙명이다. 온종일 생각에 지쳐 힘 빠질 때 ‘이제, 그만!’하면 모든 사고가 정지됐으면 하고 바랄 정도다.


그래서 나만의 생각 조절 방법을 터득 중이다. 먼저 몸을 부산스럽게 움직이거나 재밌는 책을 읽거나 모임 참여하는 등 집중할 거리를 만든다. 때론 마구잡이로 글을 쓴다. 신변잡기로 적다 보면 혀 밑에 모든 오물을 털어내고 마치 머릿속을 청소한 듯 마음이 정갈해진다.


하지만 가장 단골로 사용하는 방법은 ‘찬찬히 바라보는 것’이다. 눈동자의 초점을 앞에 있는 물건, 일, 사람에 맞춘다. 밖이라면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옷차림, 강가에 앉은 흰 새의 자태를 확대경을 보듯 한다. 가슴이 잠시 고요해지고 흥미로움에 상체를 기울인다.


천변에서 오리는 어제처럼 오늘도, 주황색 물갈퀴를 휘젓고 다닌다. 하늘은 파랗고 물가는 이토록 평온하다. ‘작년 이맘때쯤 뭘 했지?’ 무슨 생각, 어떤 고민 있었는지도 희미해진다. 그럭저럭 견디고 극복할 것인데 여전히 상처가 이토록 아픈 건지 참 우습다.


오늘도 억새와 오리를 보며 일상을 반복한다. 천천히 내 앞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면 아픔에도 살아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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