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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만한 언니가 되고 싶다

by 가을나무

- 나는 만만한 언니가 되고 싶어요-


뜻하지 않게 나는 나보다 열 살도 훨씬 더 어린 사람에게 좀 잘 보여야만 할 일이 생겼다.

설명하자면 복잡한 사연이 있었지만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같이 근무하던 젊은 교사도 아닌 쌩뚱맞게 알게 된 띠동갑도 넘은, 내가 고등학교 생활을 걸음마 배우는 아기처럼 엉기성기 시작해던 그때 정말 걸음마를 배우던 그녀를 어떻게 대할지 고민했다.


너무 치대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요원하게 접근해도 안되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나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뭐 낯선 땅에 그녀 보다 쪼금 오래 산 사람으로서의 오지랖스러운 정보를 몇 가지 알려주고 마지막에 위의 한 줄을 덧붙였다. 생각할수록 민망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녀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만만한 언니였다.




사실 고백컨데, 백화점에서 길거리에서 언니가 폭넓은 호칭으로 자리 잡기 전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나에게 언니는 쉽지 않은 단어였다. 물론 만만함은 더욱 요원한 단어였다. 난 괜히 힘을 주고 살았다. 그게 멋있어보여서...


나는 친척 관계가 매우 단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찍 개화를 한 탓인지, 독자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나의 친척들은 자식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대부분 아들이 많았으며, 울 아버지가 좀 자신의 사촌 중에서 늦게 태어나 내 아래로 여동생은 나의 친 여동생 하나와 얼굴도 낯선 육촌 여동생이 하나 있어서 난 나의 여동생에게만 언니였다.


친척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얕고 좁은 인간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나에게 언니라고 부를만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말았다. 그 이후 삼십 년의 교직 생활에서 난 한 번도 언니라고 불리지 않았다. 그냥 쌤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언니가 포괄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뒤에도 난 가게의 손님이 아니고는 언니라고 불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여동생 이외의 사람이 언니라도 하면 참 낯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언니가 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이방의 도시에서 나는 내가 사람들 모두의 언니가 될 예정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늦게 나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어쩌다 저쩌다 마흔에 아이를 낳았을 때 내 친구들은 이미 빠르면 고등학생 늦어도 유치원생의 엄마들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안고 다니며 얼굴을 트기 시작한 아이의 친구 엄마들은 적어도 다섯 살에서 열 살은 어린 엄마들이었다.


조리원에서 어린이집에서 공원에서 만난 딸아이 친구엄마들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참 낯선 호칭이었다. 나와는 한국인이라는 공통점 이외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젊은 여자들이 언니라고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언니가 되었다.


남편을 따라 이 낯선 땅에 온 뒤론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 학기 초 어머니모임에 가서 알았다. 오십여 명 엄마들 중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을 , 물론 오십여 명을 모두 확인 한건 아니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단언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스멀거렸다.


이십여 년 전 우연히 알게 된 미국인이 물었다. 아직 한국말도 문화도 낯설어하는 사람이었다.


- 한국 여자아이들은 참 다정한 애칭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왜 여자아이들 이름이 모두 같아요?-


난 좀 당황했다.

-요즘 아이들 이름이 역술원에서 지어서 비슷하거나 같은 경우도 있지만 다 달라요. 왜 같다고 생각해요?-


그 미국인은 말했다.

자기가 아파트에서 놀이터 옆 동에 산다고 헸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주말이나 휴일 같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면 그 모습이 귀여워서 가끔 베란다에 아와서 아이들 노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또래보다 어린 여자 아이가 부르는 여자 아이들 이름이 모두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린 여자 아이가 부르는 그 소리가 너무 다정하고 그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들은 너무 다정한 태도를 가진 다는 것이다.


내가 그 이름이 뭐냐고 하자 그 미국인은 더듬거리며

- 어.. 어 -


난 알아차렸다.

그 미국인이 힘들여 말하는 어..는 언니라는 것을


나는 웃으며 언니는 이름이 아니라 호칭이고 연상의 여자를 부르는 말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도 '아...' 라는 탄성을 냈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듣기에도 다정하고 따뜻한 언어... 언니

어차피 되어버린 언니...

나는 언니가 되고부터 언니 앞에 많은 수식오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 딸 이름인 채땡이 언니에서 시작해서

선생 언니, 00호 언니, 키 큰 언니(내가 내 나이대에선 좀 크다), 좀 까칠한 언니(천성을 어쩌랴), 웃기는 언니(실없는 소리를 잘해서), 이인실 언니(병원에 있을 대 이인실이 하나라서 ), 차 잘 사주는 언니(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아부를 많이 했다), 뛰어다니는 언니(직장 생활하랴 늦둥이 키우랴 항상 뛰어다닌다고) 이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언니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만만한 언니라고 했을 때, 난 갑자기 삶이 좀 가벼워지는 느낌을 느꼈다. 뭐 대단하지도 못한 삶을 살면서 내 어깨에 달고 다니던 무거움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난 만만한 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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