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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Nov 08. 2021

쓸모없는 일은 없다

나는 스스로 모든 일을 경제이론에 따 움직인다고 말했던 시간이 인생에서 참 길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


고등학교 2학년 때 경제 샘을 꽤  따랐던 결과인지 경제 점수가 항상 90점 이상이었다.

그 후로 난 결코 경제적인 인간이 될 수 없었으므로 경제 과목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경제 이론 운운한 것은 위에 말한 그 말 때문이다. 경제 시간 첫 시간에 샘이 했던 말은 뇌리에 깊게 남아 있었다.


나는 좀 게으른 편이고 세상일은 물론이고 잘하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저 좀 하는 것은 책을 읽는 일이었다.  젊은 시절 한 때 좀 미친 듯이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뭘 알아서라기보다는 알고 싶은 알 수 없는 욕망과 더불어 많이 읽는다는 자체에 괜한 자부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독서 이외에는 쓸모없는 일로 치부하고 항상 시간을 아까워했다.

뭔가를 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뭐든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시간 대비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다. 또는 드린 돈에 비해 결과가 시원치 않겠다고 생각해도 시도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하기 싫거나 못하는 것은 경제이론에 빗대어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더욱 옹색하고 좁은 인간이 되어갔다.  결혼 후에도 항상 시간이 부족했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경제이론 운운하며 그냥 그냥 살았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운명의 시간은 온다.

눈이 문제였다. 마흔을 넘어서면서 시력에 무리를 느꼈다.

건강도 문제가 왔다. 안 아픈 곳을 물어보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싶게 병치레를 했다.

육아도 걸림돌이 되었다.


나는 책을 끊었다. 한때 일 년에 한 권도 안 읽었다. 그래도 삶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처음엔 조금 무료했다. 그런데 책을 읽지 않고 눈을 들어 세상을 보니 세상은 책 속의 세상과는 달랐다.

나는 내가 하지 않던 일을 하게 되었다.


마늘을 잘 까게 되었고, 욕실 천장에 얼룩도 지우게 되었으며, 계절이 바뀌면 집안을 단속하였고, 아파트 단지에 나뭇잎이 변해가는 것도 보고,  화단에 들꽃이 피고 지는 것도 보였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 수다를 떨고, 세상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힘들거나 의미 없던 일들도 하게 되었고 때론 그것들이 즐겁고 나에게 의미를 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셔츠를 다리면서 얼룩을 발견하고 지우는 일이 싫지 만은 않게 되었다. 어떻게 얼룩이 생겼는가를 생각하고 아이와 대화도 나눈다. 어쩔 수 없이 짜증 내면서 알지도 못하는 경제이론을 대면서 회피하거나 억지로 하던 일들이 의미가 생기고 나름 뿌듯하기까지 하다.


미용실에서 수다를 떨며 믹스커피를 마시는 일이 즐거워졌다.

걷다가 풀밭에서 네 잎 크로버를 찾기도 한다.

아이 스쿨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삼십 분 빨리 나가서 괜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셔츠 얼룩을 지우기 위해 인터넷을 찾아보고 두 시간 만에 어느 정도 지우고 나서 흐뭇해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쓸모없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멋지거나 폼나지 않아도, 경제 이론에 전혀 부합되지 않게 가성비가 많이 떨어져도 쓸모없는 일은 아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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