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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Nov 04. 2021

마흔 살 초보 엄마 양수 검사를 하다

모든 게 다 좋다고 웃으며 영어로 이야기하던 의사는 무슨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나이 많은 동양인이라 다운증후군 검사를 위해 양수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짧은 영어 탓에 대강 이해하고 뭐 필요한까 하라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내 동생은 서른여섯에 둘째 낳을 때 나이 많다고 온갖 검사 했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검사는 24주에서 18주 사이어 하는 것이 좋아서 나도 15주에 검사를 예약했다. 그때까지는 그저 뭐 검사려니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검사에 대해 조금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사십 년 인생에서 가장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만약 검사 결과 아이에게 다운증후군이나 심각한 유전적 결함이 있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때까지 내가 생각한 것은 심장 판막 등의 고칠 수 있는 병을 생각했고 알고 나으면 얼른 치료할 수 있겠지 혹은 인신 중에도 치료하는 수가 있으니 그저 좋으려니 생각했던 것이다.


항상 생각하지만 막상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느꼈다.

만약 뱃속의 아이가 고칠 수 없는 장애를 가졌다면 어쩔 것인가.

상상하기도 싫었다.  나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끔찍하고도 폭력적인 사실에 맞닥뜨렸다. 나는 후회했다. 안 한다고 할 걸. 그냥 모르고 낳아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서 위험이 많다는 말에 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검사를 하자고 한 의사를 원망했고 하겠다고 한, 고민하면서도 막상 검사를 취소하지 못하는  나의 이기심에 치가 떨렸다.


나의 고민에 대해 주위 사람들은 참 별스럽다고 했다. 문제가 있으면 낳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나아서 어떻게 평생 책임을 질 거냐고 했다. 그건 부모뿐 아니라 태어날 아이도 장애를 가지고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임신하기 전에는 그랬다.

고치지 못할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이 하는 말을 조사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할 거였다. 아니 어쩌면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14주면 아이는 이미 형체도 만들어진 아이였다. 엄마의 생각을 느낄 수도 있는 거였다.

나는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은 없었다. 매일 마음이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아이가 까칠할 때면 그때 내가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도 검사를 취소하는 용기를 내지도 못했다


결국 검사 날이 왔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와 남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최후의 심판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처럼 비장하게 있었다.

나는 내가 참 독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아이를 낳았으면 이런 검사는 하지 않았을 거 같아 늦게 결혼한 나에게 원망을 했다.


검사실에 누우니 초음파로 아이가 보였다.

우리 딸은 그때도 쉴 새 없이 발길질을 하며 있었다.

긴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아이가 움찔 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너무 긴장해서 아이만 쳐다보느라 아무것도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검사가 끝났는데도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는 마치 독한엄마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듯이 움직임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왜 아이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느냐고 했더니 내가 그렇게 느껴서이지 아이는 정상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날마다  온갖 생각을 했다.

문제가 있어도 잘 키워야지 했다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검사를 한 나를 원망했고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절벽 끝에서 한 발을 들어 아래로 내리면 그런 기분일까 싶기도 했다.


아무 이상 없다는 의사의 전화를 받은 남편이 전화를 했을 때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기분이 절로 이해가 되었다.

그때 결심했다. 아이가 나중에 말썽을 부려도, 공부를 못해도,  나는 이해하기로  

그러나   이제  나는 내가 양수검사를 했던 것도 몇 년 동안 잊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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