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나무 Nov 10. 2021

늦둥이 엄마라 불리는  것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마음 설렌  딸아이가 급하게 뛰어 들어가고  뒤이어 남편과 내가 들어섰다.


숨을 고르는데 서서히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위층에서  내려오는 중년의 여인이 보였다.  내 또래쯤이었고 나는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눈인사를  끝내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 어머 늦둥이 시구나 -


다소 경쾌하기까지 한 그녀의 호기심 어린 음성이  엘리베이터  안을 채웠다.  순간 당황했다.  그녀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나와 남편 그리고 내 뒤에 빼꼼히 숨어서  얼굴만 내놓고 큰 눈을 더욱 크게 뜬 아이를  번갈아 보며  

- 정말   늦둥이시네요-



연거푸 늦둥이를 연발하며 도대제 몇 살에 나은 거냐고 묻는 듯 나를 응시했다.

어쩔 수 없이

- 네 -

라며 웃었다. 속으론 아니 늦둥이가 당신한테 뭐라 했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고 미소를 짓는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찰나의 침묵이 흐르고

- 어머 아이가 몇 살이에요?-

- 육 학년이에요.-

-어머 난 한 일학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마흔은  넘어 낳으셨겠다.-

(내가 마흔 넘어 낳던 오십 넘어 낳든 그게 댁하고 무슨 상관이야 고요)


아이가 나이보다도 심하게(?) 어려 보이는 얼굴에  키도 작고 왜소한대다가  아빠 한데 매다리다시피 몸을 웅크리고 있으니 한없이 어리게 본 모양이었다.  거기에 흰머리 희끗거리는  부모가 있으니 우리가  사십 중반도 넘어 부모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소 놀랐고 또 아이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 놀랐다며 오층에서  지하 일층까지 가는 동안의 시간이 부족하지도 않게 놀라움을 최대한 드러내고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내린 후 우리는 외출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외출이 즐거워 뛰어 나가던 아이는  시무룩해졌고 남편과 나는  말이 없었다.


다소 생각 없이 늦은 결혼을 하고  마흔에 아이를 낳은 나는 늦둥이 엄마라 불렸다.  나의 선택일 수도 있지만 삶 자체가  원래  계획도 부족하고 계획대로 되어본 적도 거의  없지만  늦둥이 엄마의 삶은 정말 계획에도 없었고 예상하지 못했다.


한번 늦둥이  엄마는 영원한 늦둥이 엄마이고 늦둥이  엄마라는  말속에는 또 다른 사회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늦둥이  엄마라 불리면서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늦둥이 엄마라 불리면 심장이 쿵 할 때가 있다.  

일단은 '늦둥이엄마'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무슨 사연에 아이를 늦게 낳았나 하는,

또 왠지 삶에서 지각  출발한 사람 같은,

아이에  대해 뭔가 부족한 엄마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가 예민한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늦둥이 엄마가 뭐 어떠냐고  별 걸 다 트집 잡는 고약하고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내가  다소 불편해한다고 내가 늦둥이 엄마인 것이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정신승리  쪽으로 나간다.

무한 긍정의 힘으로

그래서 내가 열거할 수 있는 있는 늦둥이 엄마의 장점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기보다 많다.

그래요 난 늦둥이 엄마예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쓸모없는 일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