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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Nov 15. 2021

육아에도 트렌드가 있었다.

쌍둥이 임신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부른 배를 안고 편안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보다 육아 선배인 여동생은 날카롭게 물었다.


- 언니야 출산 용품은 샀어?-

- 기저귀? 애기 옷? 신발? -


내가 임신했을 때 친구들은 모두 육아를 다 끝낸 상태였고, 그나마 외국에서 사느라 그저 몸조심하라는 말만 주구 장창 듣고 변변한 임신복 하나, 임신부용 속옷도 제대러 갖추지 못하고 살아도 아는 것도 듣는 것도 없었으니 불편함도 불안함도 없었다.


- 에휴~ -

긴 한숨 소리를 내며 여동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출산용품을 적어주었다.

그대 처음 알았다.

출산용품이 무엇인지, 출산용품이 그렇게 많은지도.


어쨌든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사실 육아에 대해 제일 자신 있던 시기는 그때였다. 늦은 나이에 그저 어쩌다 자연임신이 되었고 아무 탈 없이 달을 채우다 보니 점점 나태해지고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으로 동생에게 걱정 말라며 동생이 적어준 목록을 가지고 일단 백화점 육아 코너에 갔다. 돈도 있고 사야 할 물품도 다 아니 뭐가 걱정이야 싶었다. 


부푼 배를 내밀고 자신 있게  백화점 육아 코너에 선 나는 당황했다. 아니 젖병은 뭐가 그리 종류가 많은지 무엇을 골라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속싸개 겉싸개, 손싸개 등등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상냥한 점원이 나의 질문에 답에 들어갔다.

- 손싸개는 아이가 태열로 얼굴을 긁어 상처가 생길 수 있어서 아이 손을 싸 주어야 해요. 음 속싸개로 꼭 싸주어야 아이가 좀 더 안정감을.... 겉 싸개는.... -

- 네 고맙습니다.  한 번 둘러보고요 -

나는 백화점 커피숍에 앉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젖병은 뭐가 좋아? -

내 질문에 친구들은 당황했다.

- 그게 뭐였.. 더라. 응, 오래돼서 생각이 잘 어나 그 왜 누, 누  그 왜...- 

만 외치는 친구도 있었고,

기억을 못 하는 친구도 있었으며 친절하게 육아 수첩을 꺼내와서 찾아 주는 친구도 있었다. 

마흔 하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은 대부분 육아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늦게 아이를 낳았다 한탄하는 친구 아이도 다섯 살이었다. 


지금은 초산에 마흔이 아무렇지도 않은 시절이 되었지만 십오 년 전만 해도 마흔에 초산은 시험관 아니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친구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얻으며 쉬고 있던 나에게 여동생이 전화했다. 동생이지만 생활의 능력에 있어서는 항상 나보다 좀 우위에 있던 동생은 내가 걱정이 됐는지  전화를 했다.


나는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얻은 정보를 말했다. 내가 몇 가지 말하지 않았는데 동생은 말을 끊었다.

- 언니 기다려. 내가 갈게. 뭐 사지 말고 기다려 -

한 시간 뒤쯤 차가운 바람 냄새를 가득 풍기며 들어선 동생은 나를 끌고 육아용품 코너로 가며 폭풍 잔소리를 시작했다.


- 언니 언니가 말한 그 젖병은 한 십 년 도 더 전에 유행하던 거야 요즘 새로 나온 게 얼마나 많은데.....-

- 젖병도 유행 타니? -

- 유행을 탄다기보다 계속해서 과학적이고 더 성능이 좋은 제품들이 나온 다는 거지. 요즘 나온 젖병엔 공기가 덜 남아 있어서........ -

- 응 그렇구나 -

만담가도 아닌데 나는 동생의 폭풍 잔소리에 응 그렇구나만 남발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사고, 구경도 하고 지쳐서 나오다 마지막으로 최신 외제 유모차가 당시 내 한 달 월급보다도 비싼 것을 듣고는 놀라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 무슨 유모차가 그렇게 비싸 예전에 우리 학년에서 샘들이 몇 명 돈 모아서 옆 반 샘 아이 유모차 사 주었..... -

- 언니 그건 십 년도 더 전 일이고, 어니야 육아용품도 육아방법도 요즘은 트렌드가 있어. 아니 2007도 애를 1997년도 애한테 맞춰서 키울 거야. 언니야 걱정된다. -


그래 동생아 걱정은 된다. 

마음속으로 말하며 느꼈다.

아! 육아도 트렌드가 있구나


마흔 초모 엄마는 그렇게 육아의 트렌드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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