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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Nov 25. 2021

나는 날마다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만난다.

알 수 없는 중국어로 소리치는 간호사를 보며 나는 당황했다.

그녀는 성조 섞인 중국어로 다소 크게 말할 뿐이었지만 민망하고 당황스럽고 심지어 울고 싶어졌다.


갑자기 발가락이 아프다는 딸아이를 결석시키고 늘 가는 병원 국제부에를 데려갔다.

그곳엔 한국어를 하는 간호사가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 간 그곳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진료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애가 밤에 아프다고 해서 아침에 데려 왔는데 어떻게 예약을 하느냐는 말에 예약이 안되어 있는 시간에 의사들이 일반 부에 가서 진료를 보기에 의사가 그곳에 없다는 것이었다. 중국어만 되는 일반부에 가라는 말 이외의 답은 없었다.


나는 일단 의자에 앉아서 다른 병원을 찾았으나 칭다오엔 정형외과를 찾기 쉽지 않았다. 있다 해도 중국어가 불가능한 나에게 방법은 없었다. 급히 통역을 찾았으나 통역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시간은 11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또 오후에 진료를 해야 한다.  남편에게 연락했지만 회의 중이라는 메시지만 떴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반부에 들어섰다.


데스크에 앉은 간호사에게 가서 파파고를 돌려서 발가락이 아파서 진료를 보고 싶다고 하니 문장을 적어 주는데 파파고에 돌려고 발음만 적히고 의미가 없다. 우리가 계속 서 있자 간호사는 뭐라고 계속 말을 한다. 큰 목소리로. 목청은 좋다.


급한 마음에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서 겨우 한 지인에게 연락이 됐고 내가 스피커 폰을 켜자 간호사는 뭐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폰을 확 밀어준다.


지인은 번호표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전화기를 끄고 번호표를 뽑으러 나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번호표 뽑는 기계가 없다.

계산이나 접수하는 기계만 줄줄이 있다.


한 이삼 십분 관찰을 하다가 깨달았다.

저 기계에 접수를 하고 돈을 내야 한다.

그거였다.


나는 기계 앞으로 갔다.

화면에는 참 다정한(?) 한자가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런데 갑자기 파파고가 작동이 안 된다.

한자는 일어도 한자가 조합된 단어의 의미는 모른다.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이 나이에 어린 딸을 키우는 나도 그렇고, 중국어도 모르고 중국어만 되는 병원에서 애간장 태우며 안절부절못하는 내 처지를 생각하자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나이 오십 다섯에 중국 병원 로비 한가운데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때였다.

옆 기계에서 일을 끝낸 전형적인 중국 산동 여인이 나를 바라보았다.(산동 여인들은 대개 건장한 체격을 가졌다.) 또 내가 눈치와 행동력이 있을 때가 있다. 나는 재빠르게 아이의 카드를 내밀었다. 여인은 말없이 카드를 받아 들고 카드를 기계에 넣더니 한참 화면을 조작하고 나를 보았다. 화면에 외과라는 글자가 보였다.


나는 발가락을 가리켰다. 그 산동 여인은 내가 발가락이 아파서 거기서 울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빠르게 화면을 누르자 의사 얼굴이 두 명 나왔다. 나는 일단 앞 쪽을 가리켰다. 다음에 위신이 떴다. 나는 스캔해서 돈을 지불했다..


그러자 영수증과 카드가 나왔다.

내가 고맙다고 하자 그 산동 여인은 큰 덩치에 맞게 고개를 끄덕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내가 데스크 쪽으로 가자 삼십 분만에 나타난 나를 보고 딸아이는 엄마 어디 갔다 왔냐며 울먹였다.

간호사 앞에 가서 영수증을 보이자 22번 진료실이라고 써 주었다.


의사는 친절했고 영어를 했다. 물론 다소 어설펐고 나도 영어가 능하지 않았지만 소통은 되었다.

진료 살을 나와서 당당하게 기계 앞으로 가서 카드를 넣고 화면을 조작해서 계산을 마쳤다.

영수증을 가지고 약국을 가야 하는데 알 수가 없었다. 청소하는 할아 버지에게 영수증을 보이자 할아버지는 앞장서서 약국에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또 그 간호사들은

내 영수증을 보고 약 바구니를 보면서 메이요를 연달아 말했다.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끝이다.

전관판에 딸아이 이름도 없다.


또 지나가는 막막함.

그때 멋지게 옷을 차려입은 젊은 아가씨가 내 앞에 서 있다.

나는 되든 말든 영어로 약을 찾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 멋진 아가씨는 성큼 창구에 가서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간호사들이 일어나서 저쪽으로 가더니 약을 찾아준다.

이런......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보니 멋진 아가씨는 검은 외투 자락을 휘날리며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서 저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 나는 병원에서 선한 사마리아 안들을 만났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평생 여기저기 떠돌면서 얼마나 많은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만났는지 헤아리기 힘들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 대부분의 장소에서 매일매일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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