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주위에서 말하기를 엄마가 바라는 대로 기도하고 태교 하면 아이가 그런 성향의 사람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상당히 오만하고 나쁜 의문을 가졌다.
그럼 성격 나쁘고 못되고 이기적인 인간들은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가.
나는 우리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해서 이렇게 삐딱한 성향을 한 번씩 드러내는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발길질에 능한 아이가 마구마구 발길질을 해댈 때 나는 문득 기도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의 기도가 아이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마구 들었다. 그때 예전에 내가 했던 오만함 생각에 반성과 깨달음이 왔다. 경험하지 않고 깨달은 수많은 선지자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면 좋을지 생각하자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긍정적인 것을 모두 지닌 아이를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엄마의 장대한 환상이라는 것을 것을 오랜 교직생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성향의 아이가 좋을까
생각하자 참 어려워졌다.
착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착하기만 해서 내가 걱정하던 지인들이 떠올랐다.
고개를 흔들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생각하자 공부는 잘하는데 인성이 드러워서 치를 떨게 하던 여러 명의 나의 학생들이 떠올랐다. 더 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돈을 잘 버는 사람 이것도 아니고
예쁜 사람 이건 더 아니고
그동안 생각했던 긍정적인 단어들을 떠올리면 반대되는 상황이 떠올랐다.
갑자기 참 어려워졌다.
그동안 내가 참 잘난 척하며 했던 말 중의 하나가 어떤 자식도 부모는 그 자식의 성향을 이해해주고 기다려줘야 한다고 했던 나의 말이 내 가슴을 치며 반성이 됐다. 나도 참 욕심 많은 인간이고 오만했구나 싶었다.
마음속으로 바람직한, 또한 내 딸이 이러해줬으면 싶은 것들을 정리했다.
첫째 건강했으면 하고 기도했다.
둘째 다소 너그러운, 그래서 인간관계가 원만한, 소통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기도했다.
그리고 자기 밥벌이는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했다.
가끔 말하면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 줄 알아. 상당히 욕심이 있네 하기도 한다.
나도 욕심 있는 엄마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
어쨌든 지금 사춘기를 지나는 딸은 내가 기도하는 이런 것들을 잘 가진 사람일지 아닐지 잘 모르겠다.
그럴 때 한마디 한다.
그래 기도밖에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