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나무 Mar 24. 2022

늦둥이 엄마의 마음

   내가 마흔에 아이를 낳자 주변에서는 나이가 있으니까 아이를 더 잘 키울 거라면서 자신들이 스물몇에 아이를 낳고 했던 실수를 나는 하지 않을 거라고들 했다. 사실은 나도 그 말이 위안이 되기도 했다.


   어느 작가가 말했던 안일했던 임신이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기에 어떻게 키워야 하나 하는 걱정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막막하던 나에게 나이가 있으니 여러 경험으로 아이에게 잘할 거라는 말은 어두운 밤바다 등대처럼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 말은 그저 뭐라 말하기 힘든 상황에서 만들어 낸 피상적 의미였음을 깨닫기까지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나이 많은  초보 엄마였다

이 말은 나이와 초보라는 두 개가  다 핸디캡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며 했던 수많은 경험들은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지금도 많이 의심스럽다.



아이가 한 달 되었을 때 처음으로 외출을 했다.

예방접종을 위해서였다.  일월 초에 몇  조산으로 태어난 아이를 친정엄마와 나는 그저 조심조심하느라  집 밖에 데리고 나갈 생각을 못했다. 나도 수술 후유증으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서 그저  한 달을 집에 있었다.


그날은 마침 친정엄마가 한 달만에 잠깐 외출을 하셨고  나도 아이 젖 먹이고 한숨 자는데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무심하게 열어보니 그날이 아이 첫 번째 예방접종이나 오후 세 시까지 접종하러 오라는 메시지였다.

화들짝 몸을 일으켜 시간을 보니 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일어나서 옷을 입는데 배가 당기고 아파서 걷기가 힘들었다.

지금만 같아도 전화를 해서 반드시 그날 맞추어야 하는지 물어보고 움직였을 것이지만

그때는 그 메시지가 무슨 법원의 실행 명령처럼 느껴졌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엄마도 아차 하시면서 바로 들어와도 한 시간 이상 걸린다고 하셨다.

그때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엄마라는 책임감이 마구 솟아나는 시기였기에   내가 픈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겨우 옷을 입고 아이를 안고 나가려는데 겨울이고 처음으로 밖에 나가는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아이를 배내옷 위에 내의를 입히고 방한 우주복을 입히고 속싸개, 겉싸개, 그리고 작은 담요를 싸서 아이를 안고 나왔다.


외국에서 살다 와서, 조금 일찍 아이를 낳는 바람에 아기띠도 유모차도 없었다. 몸이  좀 나으면 준비할 생각으로 그저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외출은 당황스러움 자체였다.


아파트 단지 앞까지 나오는데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다.

아이를 겹겹이 싸다 보니 큰 겨울 이불을 안고 아기집 가방을 메고 뒤뚱 거리며 가는 것처럼 보였으니 나라도 한번 보았을 것 같다. 그때 친정엄마와 친한 아주머니 한분이 달려와서 무슨 일이냐고, 친정엄마는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내가 그냥 친정에서 가출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정을 말하자 아주머니는 일단 택시를 잡아주시고는 애기를 너무 싼 거 아니냐고 물었는데 나는 외투를 안 입었는데도 땀을 흘리며 아무 생각이 없었다.  택시 안은 따뜻했고 나는 외투를 안 입어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다.


겨우 병원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대학병원이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숨을 돌리고 진료를 준비하려는데 옆에 할머니가

- 아휴 날도 따뜻한디-

하신다.


나는 무슨 말인가 싶어 잠깐 머뭇거리다가 앞에 안은 아이를 보고 깨달았다. 너무 아이를 싸 놓았음을.....

그래서 아이를 옆 의자에 눕히고 담요를 벗기고 겉싸개를 벗겨 옆에 놓고 속싸개를 벗기는데 아이에게서 아지랑이 같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세상에나

나는 사람에게서 그렇게 김이 나는 걸 처음 보았다. 벗겨 놓으니 빨간 아이가 웃었다. 그때만 해도 아이가 참 순했다.


갑자기 느낌이 뜨끔 거려 주변을 보니 주변 사람들이 다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아까 옆에서 따뜻하다고 하신 할머니께서 일침을 놓았다

- 애기가 아주 익었구만. -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한마디 했다.

- 원래 빨개요-

그러자

-첫 애기여? 나이가 쪼깐 있어 보이는디 -

주변에 작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당황해서 아이 옷을 벗기는데 할머니는 산 같은 아이 싸개들을 잘 개켜 주시고 아이를 배냇저고리에 속싸개만 싸라고 하시며

- 애기는 좀 차게 키우는 것이 좋아. 오늘이 이월 말인디 먼일인지  바깥에 온도가  이십 도 가깝다는디 애기가 아주 짐이 다 나네. 처음인가 나이도 쪼깐 있어 보이는디-


할머니는 그 뒤로도 많은 도움을 주셨고, 내가 영 못 미더웠던지 택시 타는 데까지 따라 나와 챙겨주시며 당부를 하셨다. 그리고 말 끝에 나이도 쪼깐 있어 보인다는 말을 조사처럼 붙이셨다.

할머니의 친절이 아니었으면 아이는 정말로 익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할머니가 고마워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웃고 있었지만 할머니가 나이가 쪼깐이라고 하실 때마다 심장에 화살촉이 들어온 것처럼 따끔따끔했다.


나는 그 뒤로 십육 년이 지났지만 그때 아이 몸 위에서 모락 거리던 김이 떠오른다.

나는 나이만 많은 초보 엄마였다.  

물론 모든 나이 많은 초보 엄마들이 나 같지는 않다는 것을 잘 안다.

많은 준비와 나이에 걸맞은 풍부한 경험으로 아이를 잘 키우는 주변의 나이 많은 초보 엄마들을 보며 언제나 깊은 반성과 존경의 마음을 갖는다. 그렇지만 나의 경험으로만 보자면 나이가 많아서 젊은 엄마들보다 손쉽게 아이를 키울 수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스무 살에 하든 마흔 살에 하든 사랑은 사랑이다.  

신체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진대도 사랑의 근본적인 마음은 사랑인 것이다.

겉으로는 다르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랑의 설렘이나 사랑의 아픔은 같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스물몇의 엄마가 겪는 어려움을 마흔이라고 겪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떼쓰고 울 때 마흔의 엄마도 열 받고 당황한다.

아이가 열이 오르면 마흔의 엄마도 어쩔 줄 모른다.

아이의 장래에 대한 근심과 걱정도 비슷하다.

아이를 여럿 키운 엄마는 경험으로 잘 대처할 수 있겠지만 그냥 나이만 많은 초보 엄마는  젊은 엄마와 비슷하다.  그래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잘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들이 또 다른 편견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상처로 남기도 한다.  늦둥이 엄마도 그냥 엄마다.





작가의 이전글 체력은 국력이라지만 나의 체력은 육아의 힘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