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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Mar 29. 2022

시어머니라는 지위(?)

내가 늦은 결혼으로 달랑 딸 하나를 낳고 아들을 갖지 못할 것이 확실해졌을 때 어느 날 시어머니가 심각하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중에 죽으면 물도 못 얻어먹겠다.-

마시던 물이 얹힐 뻔했다.

팔십을 바라보는 시어머니는 진심 아들 없는 며느리라 걱정되셨으리라

시어머니에게 아들은 하늘이고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런 아들과 사는 며느리였다.


나는 그때까지 아들이 없으면 좀 서운할지는 모른다는 생각까지는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들이 없어서 제사를 못 받을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다소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아들이 없으면 뭐가 없나 생각해보니 시어머니가 될 수는 없었다. 


사실 나는 주위에서 시어머니 노릇을 가장 장 할 거라는 근거 없는 말(성격이 무심해서 남에게 관심이 별로 없고, 잔소리를 싫어해서  지적질을 잘하지 않는다는 이유)을 들은 적이 많기에 내 장점을 살릴 기회가 사라진 거 같아 좀 서운 하기는 했다. 결핍은 관심을 부른다고 문득 내가 영원히 할 수 없는 시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좀 많아졌다.


이제 내 친구들도 시어머니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과의 대화에는 '시어머니' 주제가 필수적이다. 


내가 결혼을 안 하고 있던 시절 그들은 며느리 입장에서 '시어머니'를 논했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들은 넌 며느리가 아니니 모른다고 했다. 


이제 그들은 시어머니 입장에서'시어머니'를 논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넌 시어머니가 아니니 죽어도 모른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모른다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들은 내가 시어머니가 못될 것이므로 나를 그들의 대화에서 제외하기도 하고 나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나는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그들의 뜨거운 토론에서 비켜나서 바라본다. 


아들의 사랑을 공유하는 관계로서의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뭐 세상 어디든 비슷할 거라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시어머니는 다른 나라 하고는 좀 다른 의미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 특히 조선의 역사를 보면 여성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이 되었고 여성에 대한 교육 또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나는 근대 전에 조선처럼 여성의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내훈이라 불리던 유교의 여자에 대한 교육은 지금 생각하면 참 여자에게는 가혹한 것이었다.      

복종(어려서는 아버지 결혼하면 남편, 노후엔 아들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과 

인내심(부덕을 지녀서 너그러워야 하며 남편이 축첩을 하여도 투기하면 아니 된다)

그리고 봉사(집안의 제대를 지내고 가정의 살림을 도맡으며 자식을 올바르게 교육한다)를 강요했다.      



그 삶은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 가사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고 강요받았다. 우리 할머니와 친정엄마 시어미니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처절하리만큼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삶이었는데도 별다른 반항 없는 여인들의 삶은 조선의 가부장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받침대 노릇을 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여성들이 더욱더 앞장서서 가부장 제도를 유지하고 여성의 삶을 착취하는데 앞장섰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그랬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제도적인 장치와 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교육에 열성적이고 성공했다. 

어려서부터 ‘내훈’의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켜서 세뇌를 시켰다.  

교육을 통한 세뇌는 인간의 삶을 의도하는 대로 완성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훈을 머릿속에 장착한 여성들은 며느리의 삶을 감내했다. 

어릴 때부터 마르고 닳도록 배워 신념이 되어버렸고  신념을 지키는 삶은 고난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러나 교육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체계적인 제도와 보상이 있었다.  

유교적 신념을 지키며 희생한 여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되었고 귀감이 되었다. 부덕이 뛰어난 여성은 오늘날의 인플루언서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성공한 삶으로 평가받았다. 열녀문을 하사 받았고, 재물을 얻기도 했으며, 자식들이 출세를 할 수도 있었다.


나는 그 보상 중 최고가 '시어머니'라는 지위였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모든 여성의 지위는 하잘 것 없었고 무시당했지만 그중 유일하게 권력을 가진 지위가 시어머니가 아니었을까 한다.   '시어머니'는 남보다 뛰어난 재능이 필요하지 않다. 누구나 며느리 역할을 잘 완수하고 아들이 있으면 획득되는 것이었다.


시어머니의 지위는 막강했다.

집안의 곳간 열쇠를 쥐고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으며, 며느리는 물론 집안의 모든 남성들조차도 나이 든 어머니를 거역하지 못했다. 즉 그 집안이라는 자신의 영토를 가지는 것이었다.     


시집을 가서 모든 것을 시집에 맡기고 자신의 삶을 희생하던 여성들은 목표가 있었다. 

시어머니가 되는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되면 어머니가 되면 자신이 겪은 젊은 시절 희생과 봉사와 억울함과 불평등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목표가 있었기에 힘든 삶을 참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들이 있어야 했다.

아들이 있어야 시어머니가 될 수 있었고, 자신의 힘들었던 삶을 이어서 삶을 대신해줄 며느리를 거느릴 수 있었다.     


물론 아들은 내 자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면 이유 없이 모성애가 넘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냥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시어머니라는 지위를 부여해줄 수 있는 아들은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그런데 여기 감히 아들의 사랑을 갖겠다는 며느리의 존재는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눈엣 가시 같을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젠 시어머니의 지위는 없다.

유교적 가부장 제도가 무너지고 시어머니가 갖던 무한의 권력은 사라졌다.

그래서 시어머니를 모시던 시대의 여성들은 무기력을 갖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시어머니의 횡포를 참아냈는데 자신은 시어머니의 권력을 가질 수 없으니 말이다.      



또한 젊은 여성들은 예전의 며느리의 노릇을 하지 않는다. 할 필요도 없다.  젊은 며느리들의 목표는 더 이상 시어머니가 아니다. 자신의 행복한 삶이 중요하고 자신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고 한다. 그들에게 시어머니는 남편의 엄마로서 새로운 가족의 의미일 뿐이다.     



나는 우리 민족이 역시나 교육에 강한 민족이라는 것을 요즘 다시 느낀다.

요즘 젊은 시어머니들의 변화이다. 

그들은 새로운 교육을 받았고 받고 있다.

요즘 시어머니들은 며느리 앞에 군림이 아니라 쿨하고 멋진 시어머니, 자신의 삶을 즐기는 시어머니가 성공한 시어머니라는 시그널을 받고 있어서 여기에 편승하려고 노력하는 시어머니들의 슬픈 노력을 본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숙명의 라이벌 관계인 것은 영원한 숙제이기에 고부관계의 문제는 영원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시어머니가 되지는 못할 이므로 이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어떻게 생각하면 참 편한 사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안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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