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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Jun 21. 2022

눈치가 없어서...

삼심 년 간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섭섭함보다는 시원함의 감흥에 빠져 있는 나에게 후배가 물었다. 

어떻게 삼십 년 을 그것도 항상 낯설었던 많은 곳을 스쳐 다니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냐고.


그래서 좀 심각하게 생각했다. 성격상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몇 분이었지만......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 눈치가 없어서-


후배는 내가 웃기려고 그러는 줄 알고 진지하게 답을 하라고 했다.

난 세상없이 진지했다.


이것은 진실 중의 진실 팩트 중의 팩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눈치가 좀 없는 아이였다. 거기다 좋은 것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항상 책에 빠져 있어서 세상 일에 눈치가 없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서툴렀지만 눈치 없음으로 인해 그다지 상처받지 않고 직장 생활을 그럭저럭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이 들고 엄마가 되면서 나는 책에서 빠져나와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눈치가 생기기 시작했다. 없던 눈치가 발달하자 자의식이 덩달아 생기기 시작했고 눈치보기가 힘들어져서 정년을 십여 년 남기고 나는 퇴직을 했다.


  첫 발령받았던 남쪽의 어느 섬은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고향은 아니지만 내 고향 남쪽 바다라는 말이 연상될 정도로 푸른 바다도 예쁘고 하늘도 예뻤다. 그리고 가끔 울기도 했다. 고향이 그리워서, 사람이 그리워서, 그리고 잘못 찍은 점이 안타까워서....

 교사 10명의 작은 학교는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교육철학을 가진 교장 선생님이 계신 곳이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왜 교장선생님께서 조회마다 인화를 중시하셨는지 알게 되는 데는 다소의 시간이 걸렸다(눈치가 없어서 )

 서류에 점 하나 잘못 찍어서 결제받으러 가면 교감은 꼭 교무부장에게 화를 냈다. 신입을 어떻게 교육시켜서 점도 하나 못 찌느냐고. 그런 졸고 있던 육십 줄의 교무 부장은 잠에서 깨어서 나에게 화를 내면서 둘이 치고받기 직전까지 싸웠다. 나는 이런 상황이 되면 아! 다음에는 잠을 잘 찍어야지 점을 잘못 찍으면 윗사람들이 싸우게 되는구나 생각하면서 점을 잘못 찍은 나를 반성하고는 했다. 


  나는 혼이 나면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러는구나 생각하면서 실수를 만회하려 힘썼다. 그래서 몇 년 후 나는  기안문을 상당히 잘 작성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당시에도 그 후에도 두 사람의 알력관계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눈치도 못 챘다. 세월이 흘러 내가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을 때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그들은 서로 간에 분노를 나에게 화풀이했음을 알았지만 두 사람에게 특별한 원한은 가지지 않았고 지금도 그랬다.


  그런데 다시 삼십여 년 후 비슷한 상황이 같은 사무실에서 생겼을 때 내 일이 아닌데도 나는 하루 종일 우울했고 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불편했다. 그때 다시 한번 꺠달았다. 눈치가 빤한 게 좋은 건 아니구나 근데 왜 난 없던 눈치가 생겨서 불편한 건지 원......


  눈칫밥 먹는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게 눈칫밥 먹는 것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눈치가 생기면 서였던 것 같다. 그만큼 눈치 보는 일이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끝이 없다. 소통의 중요성도 관계의 어려움에서 나오는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중요한 눈치를 탑재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등줄기가 서늘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눈치 없던 나는 전혀 괴롭지 않았다. 눈치 없는 인간은 범보다 무섭다는 속단이 떠오른다. 아 나는 범 보가 무서운 인간이었네  문득 내 눈치 없이 행복했던 (?) 시절 범 같은 저 때문에 속상하셨던 분들에게 심심하게 사과하고 싶다. 진심으로......


  지금도 그닥 눈치가 뛰어나지 못해서 나이에 맞지 않게 어리바리하게 살고 있지만 눈치가 있으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고 하는데, 눈치가 없어서 절에서 새우젓은 못 얻어먹었지만 눈치 없어서 직장생활을 무사히 했다는 뒤늦은 자각 앞에 참 난감하다. 나의 눈치 없었음을 좋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쁘다고 할 수는 더욱 없고......


  내 대답에 어이없어하는 후배 앞에서 뜨거운 커피만 그저 홀짝거리며 생각했다. 나도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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