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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Jul 25. 2022

오롯이 좌절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없는  마음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중략)   아버지가 이렇게 매번 제 삶에 끼어들어  좌절까지 막아주시는 게 싫습니다.-


별생각 없이  보던 드라마  대사 한마디가 날카롭게 가슴속을  헤집어 놓았다. 더 이상 드라마에 집중할 수 없었다.  마시던 커피의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당황하고 있었고 한밤 중 운전을 하다가 내가 길의 좌표를 잃어버리고 다른 길로 가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처럼 등줄기의 서늘함 속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밤늦은 시간 아이의 닫힌 방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생각했다. 내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이 아이의 삶에 끼어들었고, 끼어들고 있으며 끼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깨닫고 있었다.


나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상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랜 교직 생활을 하며 과도하게 아이의 학교 생활에 끼어드는 부모를 보면 그래서 아이의 학교 생활에 문제가 생긴다고 입바른 소리를 성마르게 해댔다. 그리고 내가 부모가 되면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태도를 기르게 하겠다고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을  해댔다.


마흔에 아이를 임신했을 때  주의에서 늦게 갖은 귀한 아이라는 말에 단호하게 말했다.


젊든 나이가 있든 자식이 귀하지 않겠냐,  귀하다고  부모가  너무 챙겨 키우면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건방지기까지 한 말을 멋있게 해댔다.


그땐 몰랐다.

내가 얼마나 간섭쟁이 엄마가 되어 아이의 삶에 끼어들기를  하게 될지를.


물론 사연 없는 무덤 없더라고 내가 간섭쟁이 끼어들기 엄마가 된 타당한 (?) 이유는 있다. 아이는 한 열흘 정도 일찍 태어나 작고 약했으며,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 남편에게 뒤집어 씌우지만 나의 예민한 기질을 상당히 많이 닮았으며, 부모 탓에 외국 생활을 하여 초등학교 입학을 한국에서 하지 못하고 일학년 여름 방학에 한국 학교로 전학하여  분위기 파악이 늦어 전학 와서 얼른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난 또래보다 신체적 정서적으로 약간 늦되어 보이는 딸 앞에서 '그래 대신 엄마가 해줄게'라는 잘못된 사인을 계속 보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합리화를 무기 삼아 딸아이를 상처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생각이 다른 모든 이성을 마비시켰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딸아이가 하룻밤을 펑펑 울어 눈이 보이지 않은 상태로 학교에 가던 날 나는 학교에 반차를 내고 아이 몰래 아이를 따라서 아이의 학교에 갔다.


아이 몰래 학교에 갔지만 막상 선생님을 만나기는 그랬다. 딸아이 친구가 다른 아이들에게 딸아이가 재미없으니 놀지 말고 자기와 놀자고 아이를 따돌렸는데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그저 울기만 했다. 생각하면 별 일 아닌 거 같기도 했고, 또 이렇게 시작된 일이 왕따로 이러지는 많은 학폭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많이 봐 와서 그냥 넘기기도 그랬다.


시간은 가는데 나는 매미 마냥 나무 뒤에서 교실을 바라보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00 어머님 여기서 뭐하세요?-

돌아보니 아이 담임 선생님이 계셨다.

-애들이 누가 나무 뒤에서 우리 반을 자꾸 바라보고 숨는다고 해서요.-

-아..... 네..... 그니까 선생님 저 우리 00 이와 친구 **를 떼어주세요 왜냐면.... -


나는 온몸이 타들어가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사실을 말했다.

사실 그렇게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좀 더 부드럽게 좀 더 우아하게 사실을 말하고 선생님의 조언을 구하려 했으나 개뿔........


나는 그저 아이 일에 쌍수를 들고 달려와서 학교를 시끄럽게 하던 진상 엄마 이상도 이하고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은 참 그랬다.

아이일에 바닥을 보인 내가 그랬는지,

나무 뒤에 숨에 있던 가 그랬는지

그렇게 어버 거리며 말도 안 되게 직설적인 내가 그랬는지

어쨌든 참 그랬다.


그리고 나의 그런 태도에도 아이는 그 친구와 잘 지냈다.

내가 아이 일에 끼어드는 수많은 많은 엄마들에게 말한 대로 싸우고 화해하며.....


그 이후로 나는 아이의 일에 끼어들고 싶을 때마다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나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한 번씩 아이를 보호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끼어든다.  


나는 안다.

사람은 노력하고 좌절하며 성장한다는 것을.... 세상일에도 인간사에도

그런데도 브레이크 고장 난 차처럼 속도 조절이 안되고 흥분하며 아이일에 끼어든다.


문득 오늘 부담 없이 보던 드라마에서 참 부담이 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오롯이 좌절할 수 없게 하는 엄마인 나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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