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삼십 년 동안 남의 자식 일에는 무던히도 관여했으나 막상 늦둥이 딸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는 어려웠다. 지금도 어렵다. 앞으로도 쉬어질 것 같지는 결코 않다.
자식을 버릇없게 만드는 것은 부모라고 간 크게 단언하던 나는 딸아이를 키우면서 헤아릴 수 없는 반성과 회한에 휩싸여 살아오고 있다. 그렇지만 문득 나도 잘한 것 한 가지는 있다는 생각에 백만분의 일 만큼의 안도감이 든다. 딸아이는 인사를 잘한다.
지난 일요일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가 지인의 시부모님을 만났다.
딸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구십 도로 폴더 인사를 했다. 당연하게 칭찬을 들었고 모처럼 딸아이와 나는 화기애애하게 산책을 마쳤다. 마음속에 밀려드는 흐뭇함에 입가에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처음부터 딸아이가 인사를 잘하는 상냥함과 예의를 지닌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도 타인에게 싹싹하게 상냥하거나 예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인사를 잘한다. 여기에는 엄마인 나의 인내를 동반한 노력이 있었다.
아이가 다섯 살 때 우리는 외국에 살며 외국인들과 패키지여행을 갔다. 3박 4일로 태국에를 갔다. 돌아오는 날 얼굴을 익힌 영국인이 아이를 안은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아이가 너무 부모에게 붙어 있는 것 아니냐고..
나는 순간 당황했다. 생각해보니 그 3박 4일 동안 아이는 걷지 않았다. 계속해서 남편이 안고 다니거나 내가 업거나 했다. 나는 잘 걷지 않고 안기거나 업혀 있으려는 아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키우는 아이인 데다가 남의 아이를 잘 보지 않아서 남의 아이가 걸으면 그저 그러려니 했던 터라 우리 아이를 항상 안거나 업는 것도 그러려니 했다.
아이 아빠는 딸 바보답게 웃으며 외동이라 버릇없는 아이로 키운다고 했다. 외국인은 웃었고 우리도 웃었다. 하지만 가슴속에 뭔가가 쿵하고 울렸다. 나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아이이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참 버릇없는 아이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버릇없는 아이로 보이며 자라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만 하루아침에 아이를 바꿀 수도 없고 부모인 우리의 태도를 바꿀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쯤 아이가 사람들을 보면 세 살 이후 잘하던 인사를 하지 않고 자꾸만 내 치맛자락을 잡고 뒤로 숨었다. 나는 다른 것은 못해도 인사는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여기에는 예의를 떠나 나만의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인사를 하지 않으려 하면 머리를 잡아서 살짝 눌렀다. 보는 사람들은 질색을 하며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꾸준히 했다. 사람을 만나면 그가 누구이던 아파트 경비 아저씨든 가게의 주인아줌마든 상관하지 않고 인사를 하게 했다. 이 방법이 좋다기보다 인사를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것은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일곱 살쯤 되었을 때 아이가 반항을 했다. 내가 머리를 누르려 하자 거칠게 반항을 하며 도리를 했다. 그리고 내가 자기 머리를 누르는 것이 싫다고 했다. 순간 내가 잘못했구나 싶었다. 아이의 자존심이 상한 게 아닌가 싶어 진지하게 사과를 했다. 그동안 엄마가 머리를 눌러서 미안하다고. 엄마는 네가 인사를 잘하게 하고 싶었는데 그게 기분 나빴으면 엄마가 잘못한 거라고 사과를 하고 나서 다시는 머리에 손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인사는 꼭 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나의 사과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나도 다시는 아이의 머리를 누르지 않았다.
그런데 머리를 잡아서 방향을 잡아주지 않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행동이 좀 늦은 데다가 낯을 심하게 가리던 아이는 항상 인사가 늦었다. 그래서 아이가 인사를 할 때쯤 그 사람은 이미 가버리거나, 혹은 사람의 뒷 꽁무니에 대고 인사하기, 어떤 때는 사람은 이미 지나쳤는데 벽에다 대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면 항상 인사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삶들은 무슨 인사냐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아니 인사는 해야지라고 말하며 꼭 인사를 시켰다. 꾸물거리는 아이를 보며 그냥 가려는 사람에게도 꼭 인사를 받게 했다. 그 사람이 돌아섰어도 다시 불러
"우리 딸이 인사해요"라고 말해서 인사를 받게 하고, 인사할 때 그 사람이 못 봤으면 다시 하게 했다. 아이가 꾸물거려 인사를 했는 데도 못 보거나 엉뚱한 벽에다가 인사를 하고 있으면 속으론 열이 나도 절대 화내지 않았다. 인사를 시킬 때는 절대로 화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물론 이것은 내 생각이고 아이는 엄마가 화낼 때가 많았다고 하는 상황 불일치가 있기는 했다.) 어쨌든 만나는 사람에게는 인사를 하게 했다. 내가 아이에게 가장 열심히 시킨 교육이었다. 나중에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자기에게 인사를 시킨 것처럼 다른 것을 시켰으면 잘했을 거라고...
얼마 전 식당에 갔는데 밥을 먹고 계산을 다 마쳤는데도 딸아이가 꾸물거리며 식당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딸아이를 불렀다. 그런데 내가 이름을 부르지 갑자기 딸아이가 앞에서 계산하는 식당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다. 사장님은 잠시 당황하시다가 웃으며 인사성이 참 밝다고 칭찬하며 사탕을 몇 개 집어 주셨다. 아이가 나오자 내가 물었다.
" 저분 알아?"
"아니.."
그리곤 자기도 어이없는 듯 씩 웃더니
"엄마가 이름을 부르니까 나도 모르게 인사가 나왔어. 히히... 엄마가 항상 밖에서 사람을 만나면 그러잖아 채원아 인사해야지. 근데 갑자기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니까 그다음에 인사해야지 할 것 같은 거야. 고개를 드니까 사장님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인사했어. 근데 사장님이 칭찬하니까 쑥스러운데 기분이 좋아. 엄마 내가 학교에서 제일 인사 잘하는 학생이라고 칭찬 들어. 엄마도 내가 예의 바른 학생이라니까 기분 좋지"
"그래 좋아 엄마가 그거 하나 너한테 잘 가르쳤다...."
그런데 그 뒷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왜 딸아이에게 그렇게 인사를 가르쳤는지......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꼭 예의 바른 사람을 만들기 위해 인사를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 나는 참 부끄러움이 많았고 낯을 심하게 가렸다.
그때는 인사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고 그 사람의 평판을 떠나 그 집안의 가정 교육과 집안의 가풍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부끄러움이 많았고 인사를 하는 것도 부끄러웠다. 그런데 인사를 안 하면 혼이 나는 것은 물론 과부의 자식이라 가정교육이 잘못되었다고 평가받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멀리서 아는 어른이 오면 미리 길을 돌아가기까지 했고, 집안에서도 사람이 없는 아버지의 서재로 숨어 들어서 책을 읽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에게 제 때 인사를 하지 못할까 봐 항상 걱정이어서 쉬는 시간에 복도에 선생님들이 계시면 복도에 나가는 것이 꺼려졌다.
그래서 항상 마음의 부담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다가서기가 두려웠다. 처음 인사하기가 힘들어서 대학에서도 사람을 많이 사귀지 못했고 난 좀 독특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딸아이가 자라나며 유독 낯을 가리고 소극적인 성격이 드러나자 나는 고민이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애가 좀 내성적인 것인데 뭘 그리 고민하느냐며 나를 예민한 사람 취급했다,
나는 아이가 좀 사회적인 성향을 가진 소통하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런데 소심하고 겁 많은 두 눈을 보고 있으면 사람을 피해 자꾸만 숨어들던 내가 보였다.
어린 시절 나를 떠올리자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이 어렵던 생각이 났다
나는 딸아이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인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게 가르치고 싶었다. 누구라도 인사하는 사람을 이유 없이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었는지 딸아이는 모른다.
사람들도 그저 내가 예의에 집착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친구는 너도 예의 없는데 왜 그렇게 아이에게 예의를 가르치려 하느냐는 팩트를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인사할 수 있으면 소통은 훨씬 쉬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거스로 사회성을 키워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인사 잘한다고 사회성이 뛰어나진 않겠지만...
늦둥이 딸이 인사성 좋고 사회성 좋기를 바라는 가진 것도 능력도 없는 나이 많은 엄마의 슬픈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딸아 엄마는 다 계획이 있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