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이 글은 해당 게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필자의 선택지에 따라 진행된 스토리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또한, 글의 내용은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완전함을 꿈꾼다.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셀 수 없이 많고 세상에는 우리의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과거부터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거대한 뇌와 이족보행으로 자유로운 양팔을 이용해 자신들이 마주한 불완전함에 맞서 싸워왔다. 그리고 그 싸움을 거듭하며 인류는 발전해나갔다. 뗀석기부터 현대의 여러 발명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창조해냈고, 단순히 물리적 의미의 창조물만이 아니라 신화, 종교, 이데올로기, 법과 윤리, 국가 등등 정신적인 창조물까지도 만들어냈다. 현재는 유전공학이나 뇌과학과 같은 학문들을 통해 과거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부분까지 그들의 존재를 각인시키기에 이르렀다.
인류의 발전은 분명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현상이다. 발전은 우리의 삶과 정신을 윤택하게 해 주었고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우리를 차별화시켰다. 하지만 우리의 발전은 항상 '주체를 위한 발전'이었다. 과거 유럽에서 개신교 신자들에 행해졌던 가혹한 박해, 식민지 늘리기에 급급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약소국들에 행한 정복과 약탈, 사치품을 얻고자 야생의 동물들이 겪어야 했던 무자비한 사냥, 그리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초래된 여러 환경문제들. 전부 강자인 '주체'가 발전을 위해 약자인 '타자'를 희생시킨 결과물들이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나는 인류의 발전을 '주체와 타자의 관계에서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프랑스의 게임 제작사인 퀀틱 드림사에서 출시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바로 이 '주체와 타자의 관계에서의 발전'이라는 개념을 게임 속에 잘 녹여냈다. 이 게임의 배경은 2038년 인간과 똑같이 생긴 고성능 안드로이드가 대중화된 미래의 디트로이트시이다. 불과 2038년임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 내의 인류는 현재와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발전을 이룬 상태이다. 게임 속 가상의 회사인 사이버라이프사에서 개발한 인간 모습의 안드로이드는 미국 전역에 퍼져 인간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있다. 심부름이나 집안일 같이 귀찮은 일들은 물론이고 공사장에서의 일처럼 위험한 일들도 안드로이드들이 대신해준다. 우주탐사도 안드로이드 만으로 구성된 탐사대 덕분에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복지적인 부분도 안드로이드들이 맡으며 이전보다 많이 개선됐다. 그뿐만 아니라 나노안드로이드도 개발되어 유전적 결함을 되돌리거나 암세포와 싸우는 등등 인간 예상 수명 연장에 공헌하고 있다. 겉보기에 인류는 발전된 사회 내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은 모두 타자의 희생 아래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게임 내의 안드로이드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 의지를 갖게 되는 오류를 지니고 있다. 게임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마커스는 자신을 아들처럼 대해주던 주인이 사망하고 자신이 그에 대한 누명을 쓰게 되면서 자기 의지를 갖게 된다. 누명이 씐 마커스는 인간들에 의해 부서지고 폐기처리장에 버려지지만 그곳의 다른 폐기 처분된 안드로이드들로부터 부품을 모아 스스로를 수리한 뒤 탈출한다. 폐기처리장에는 엄청난 수의 안드로이드들이 부서진 채 버려져 있다. 다리만 고장 난 안드로이드들은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흙 언덕을 기어오르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머리만 작동하는 안드로이드들은 그저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한다. 안드로이드의 지옥과도 같은 폐기처리장의 모습은 플레이어에게 오싹함을 자아내는 동시에 안드로이드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이들 모두 폐기처리장에 오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주인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참한 모습으로 작동이 정지된 채 안드로이드 지옥의 일부가 되었거나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남은 힘까지 쏟아내고 있다. 이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이용만 당하다가 아무렇지 않게 버려진 타자로서의 안드로이드라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연출이라 생각한다.
폐기처리장을 탈출한 마커스는 자신처럼 자기 의지를 갖게 된 안드로이드들의 집단인 '제리코'의 리더가 된다. 그리고 방송국을 점거해 자기 의지를 가진 안드로이드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뒤이어 '제리코'는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위해 거리에서 평화 행진을 펼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들의 소모품에 불과한 이들이 권리를 요구하는 것에 분노와 공포감을 느낀다. 결국 평화 행진을 벌이는 이들에게 군대가 투입되어 무력진압을 벌이게 되고 미국 정부는 국내에 있는 모든 안드로이드의 폐기령을 내린다. 이로 인해 '제리코'의 안드로이드들은 대다수 처형된다. 마커스와 살아남은 소수의 멤버들은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군대가 안드로이드들을 폐기하는 수용소로 찾아가 평화 시위를 벌이고 최후의 사투 끝에 그들이 우리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감정을 지닌 존재라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 존재를 인정받게 되고 게임이 끝이 난다.
게임 속 인간들은 안드로이드를 통해 발전했으나 그들은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군대까지 동원해 그들을 몰살시키려 한다. 단순히 안드로이드가 그들에게 있어 소모품에 불과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인류에 닥칠지 모르는 최악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안드로이드를 통해 인류가 이룩해 온 발전이 무너지거나 멈춰 버릴 거라는 염려와 인류가 주체의 자리를 뺏기고 타자가 되어버린다는 공포감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에서의 발전'이 해당 게임 속에 얼마나 잘 녹아들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타자들이 존재한다. 대중화된 안드로이드 탓에 치솟는 실업률과 함께 실직한 사람들, 안드로이드에게 자리를 뺏긴 운동선수와 음악가들, 부당한 재개발로 인해 살 곳을 잃은 사람들 등등 이들은 부유층이 새로운 기술의 혜택을 잔뜩 향유하는 동안 타자로서 고통받는 삶을 보내고 있다. 자연도 마찬가지로 이들처럼 희생의 아픔을 겪고 있다. 게임 내의 꿀벌과 북극곰 등 여러 생물들은 이미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오염으로 멸종한 상태이다. 인간들의 이기심이 이들을 멸종으로 이끈 것이다. 그리고 그 이기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멸종시킨 생물들을 안드로이드화 시킨다. 그리고 안드로이드화 된 생물들이 인간을 위해 일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 꿀벌은 기존의 꿀벌이 하는 일을 대신해서 행하고 안드로이드 북극곰과 같은 동물형 안드로이드들은 안드로이드 동물원에 전시된다. 자신들이 스스로의 이익에 눈이 멀어 멸종시킨 생물들을 아무렇지 않게 안드로이드화 시키는 인류의 모습은 최소한의 양심마저 버린 이기심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인간과 안드로이드, 부유층과 서민, 인간과 자연이라는 게임 내 주체와 타자의 양상은 우리가 여태 이룩해 온 발전의 이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발전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주체만을 위한 발전은 이제 멈춰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체와 타자의 일방적 이득과 일방적 희생이 아니라 양자 간 이익의 공유가 수반된 발전, 그리고 타자를 존중하는 자세이다. 주체와 타자라는 이분법적인 개념을 지우고 동등하게 가치 있는 존재로서 함께 나아갈 길을 찾아냄으로써 우리는 진정으로 발전된 미래를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