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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na Oct 28. 2019

직장인, 배우가 된다

직장인 취미 가이드북 l 고급편 (1)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연기를 한다. 재미 없는 농담도 재미있는 척, 불편해도 불편하지 않은 척,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척. 사회생활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나 진짜 배우 뺨치는 연기실력을 가지고 있다. 아까운 그 실력, 진짜 무대에서 써보는 건 어떨까?


최근 많은 직장인들이 도전하고 있는 '직장인 극단'에 대한 이야기다. 연극 또는 뮤지컬 한 작품을 선정하여 4개월 가량 연습 후 무대에 올린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어제의 대리님이, 오늘은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이 글을 읽으면서도 아마 남 일처럼 느껴질것이다. 이해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만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또는 연기를 잘하거나 노래를 잘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이와 같은 고민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나는 네 개나 되는 작품을 무사히 올렸다. 그러니까 하고싶은 말은 이거다.


연극? 야, 너두 할수 있어 (feat.조정석)


내향적인 사람이 연극을 하면 외향적으로 바뀐다던가, 말주변이 없던 사람이 스피치 실력이 늘어난다던가 하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사람 쉽게 안 변한다. 공연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런 과정이 모두 스트레스가 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직장인 극단에서 공연을 올리는 일반적인 과정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풀어볼까 한다. 다소 긴 글이 되겠으나, 글을 읽고 직장인 극단에 흥미가 생긴다면 지금 바로 도전해 보시길.




1. 어디에 들어가야 하지?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봐도 직장인 극단이 수십가지 뜬다. 장소도 제각각이요, 이름도 제각각인 이 수많은 단체들. 뭘 믿고, 어디에 가야 할지 너무도 난감했다. 솔직히 검색하다가 포기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연기를 잘해낼 자신도 없는데 뭐하러 이렇게 공들여 검색하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결국 '아무곳'이나 들어갔다. 그랬더니 웬걸, 그 극단에 도착해서 내가 한 일은 웬 사이비 종교같은 체조였다. 중간에라도 도망가려 했지만 닫힌 문이 그날따라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인원이 모이질 않아 폐강하는 경우도 많고, 연기보다는 이론수업을 중점적으로 해서 지루한 곳도 있었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준비했다.


① 규모가 큰 곳을 찾아라
- 앞서 말했듯, 직장인 극단은 그 수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에 비해 배우로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적다. 그러니 인원이 부족해서 공연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이 발생한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되도록 규모가 큰 곳을 찾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활성화가 된 곳일수록 이상한 곳일 확률 역시 적은 편이다.


② 네이버 카페를 활용하라
- 요즘 누가 카페를 쓰나요. 라고 나도 생각했다. 하지만 영세한 규모 탓에 홈페이지를 만들기 어려운 직장인 극단들은 네이버 카페를 애용하는 편이다. 카페에 들어가 지난 공연들 사진을 살펴보자. 무대는 어느정도로 꾸몄는지, 배우들은 몇명이나 나오는지, 사람들의 후기는 어떠한지를 확인하라. 기왕이면 멋진 무대에 서면 좋겠지만 무작정 무대가 화려한 곳을 고른다면 공연비가 비쌀수 있다. (직장인 극단은 매 월 회비를 받고 공연 직전에 대관료 등을 위해 공연비를 따로 받는다) 배우가 많이 나오는 극을 주로 올렸다면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사귈수 있는 반면, 자신의 분량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서 극단을 고르도록 하자.


③ 테스트 수업을 이용하라

- 탈잉, 숨고 등 재능 판매 사이트를 통해 극단을 서칭해보자. 이런 곳에서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1회 수업을 테스트 수업처럼 열어두기도 한다. (물론 1회분의 수업 비용은 발생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는가, 직접 겪어보는 것 만큼 최고의 사전조사는 없다.




2. 오디션을 봐야 한다구요?

그렇게 극단을 골랐다면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 대부분 첫만남에서는 전체 커리큘럼에 대한 OT와 함께 자기소개, 그리고 오디션이 진행된다. 오디션은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는데 이는 방문 전 전화 등을 통해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나는 이미 여기에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1000%정도 올라왔었다. 오디션이라니!! 나는 연기와는 담쌓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인데!! 너무 긴장되고 백프로 떨어질거라는 생각에 두려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두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오디션'처럼 잘 못하면 떨어지고 불합격 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발음은 어떤지, 발성이나 말의 속도는 어떤지 연기력은 어느정도인지 파악하기 위한 절차다. 이를 통해 극단의 연출이 배역을 분배하고 향후 수업 방향을 결정한다. 물론 이걸 알아도 떨리는건 어쩔 수 없다.


오디션이 있는 곳은 대개 대본 일부를 공개해두고 지정 대본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고, 필요한 경우 자유연기가 추가되기도 한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이거 해보세요, 저거 해보세요 하지 않으니 대사 정도만 외워가도 좋다. 물론 외워도 막상 오디션이 시작되면 까먹는다. 하지만 대본을 보고 하면 뭐 어떠랴, 우리는 일반인이고 여기는 아마추어 직장인 극단인데.




3. 레슨과 연습 또 연습 레슨 연습 또 연습?

나는 야근 많기로 유명한 광고회사에 다닌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취미를 위한 시간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내게 연극이라니. 연습할 시간도 없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네 개나 올릴 수 있었던 건, 일주일에 딱 하루만 시간을 내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공연을 올리기 1~2주일 전에는 사람들끼리 모여 추가 연습을 하거나 매일같이 만나는 일도 부지기수이긴 하나, 대부분의 경우 매주 단 1회 뿐이다. 매일같이 연습에 연습에 또 연습을 해야하는 강행군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연습시간이 부족해 불안하다면 연습이 없는 자투리 시간에는 대사를 외워보자. 대사를 외울 때에는 청각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같은 직장인들이 자리 펴고 앉아서 대본만 주구장창 외울 시간이나 있겠는가. 연습때 자신의 대사를 녹음해 두었다가 일하면서 틈틈히 듣는 것 만으로도 머릿속에 대사가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첫 수업에서는 대개 '대본리딩'이라는 것을 하는데, 말 그대로 다같이 앉아서 대본을 보면서 읽는 것이다. 이때에는 움직임이 없으므로 잡소리가 들어가지 않아 대사를 녹음하기에 아주 좋다. 나의 대사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대사도 모두 알아야만 주고 받는 일이 가능하므로 전체 씬을 녹음하여 들어보자.




4.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무대장치, 조명, 연출, 배우 등 모든 것이 갖춰져야 한다. 연출은 극단에서 전문 강사를 섭외하는 경우가 많고, 조명 역시 극단 쪽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무대와 소품, 의상은 배우들이 직접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다. 무대에 올릴 여러가지 세팅들, 들고 나오는 자잘한 소품들, 배우들이 입을 무대의상은 연출가와의 상의를 거쳐 개인 사비로 구매하게 된다. 이미 회비를 냈는데 또 개인 돈을 써야 한다는 게 솔직히 참 별로다. 하지만 영세한 극단들은 별도의 창고를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입한 의상 및 소품을 보관할 수가 없다. 해서 개인 돈으로 소품 및 의상을 구매한 뒤, 공연이 끝나면 구매한 사람이 그대로 물건을 가져가는 구조이다.


야광테이프 등을 활용해 소품을 놓을 위치를 바닥에 표시해 놓는다


공연을 할 때에는 대관료를 지불하기 위해 공연비를 걷는다. 공연장의 컨디션에 따라서 공연비는 크게 다를 수 있다. 직장인 연극도 참 돈이 많이드는 취미인 것 같다. 대개 공연은 토요일, 일요일 이틀간, 하루 2회씩 진행된다. 공연 날이 되면 아침일찍 모여 몸을 풀고, 런을 돈다. 런을 돈다는 것은 실제 공연을 하는 것처럼 끊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뮬레이션 해 보는 과정을 말한다. 말하자면 최종 연습인 셈이다. 간단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하우스 오픈(관객 입장)시간까지는 개인 연습을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로 긴장이 안 된다. 평소처럼 런도는 것 같고, 그냥 빨리 끝내고 술이나 먹고 싶은 마음이다. 긴장감은 하우스 오픈 후, 백스테이지에 갇혔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 안에 있으면 진짜 시간이 안간다. 특히나 내가 비중이 적은 배역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공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큰 소리도 내서는 안되고 놀면서도 내가 나올 타이밍을 놓치면 안된다. 몇십번이고 봤던 공연을 또 보는 것처럼 지루해 미치겠지만, 내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씬에 귀를 기울이며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백스테이지야 말로 공연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누가 틀렸는지 귀 기울였다가 큭큭거리고, 긴장하는 서로를 다독이며 마지막까지 대사를 맞춰보는 그 모든 과정이 말이다.



5.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공연이 끝나면 모든 배우들은 로비 또는 무대로 나와 객석의 손님들과 인사를 한다. 직장인 극단에서 올리는 공연이 늘 그렇듯, 대부분이 지인 관객이다. 부모님, 친구, 회사사람 등등... 주말에도 먼 길 찾아와준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함께 사진을 찍는다. 선물로 꽃다발이나 술 등을 가지고 오는 지인들이 많아 양 손이 무겁다. 하지만 때로는 의상이며 소품 같은 자잘한 짐이 너무도 많다 보니 이런 선물들이 짐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해서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지인들을 초대할 때 이런 선물은 없어도 좋으니 마음만 가지고 와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이날은 짐이 무지 많다. 개미처럼 조금씩 조금씩 극장으로 퍼다 날랐던 모든 소품들을 하루에 한번에 다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캐리어를 끌고 나타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의 양이다. 하지만 공연이 끝났다면 뒤풀이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이 모든 짐을 들고 술을 마시게 된다. 술자리에서의 대화는 대부분 오늘 공연 어땠다, 누가 실수했더라 식의 이야기. 키득거리며 공연을 한바탕 되짚어 보고 있자면 우리가 정말 (아마추어) 배우가 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옆 테이블에서 대화를 들었다면 어땠겠는가, 누가 봐도 배우였을 것이다.




직장인 연극, 직장인 뮤지컬이라는 취미는 사실 접근성이 매우 나쁜, 어려운 취미이다. 하지만 노력과 고생이 들어가는 만큼 값진 열매를 가져다 주는 취미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고,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무대위에서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 무대 뒤에서 소박하고 따뜻한 추억을 쌓을 수도 있다. 인생 뭐 있나, 지금 하지 않으면 또 언제 도전해 보겠는가! 에너지를 얻고 싶다면 직장인 극단을 추천한다.




직장인 취미 가이드북ㅣ고급편 (1) 직장인 극단


난이도 ★★★★★

취미비용 : 약 월 150,000원 (공연비 미포함, 월 회비는 단체마다 상이할 수 있음)

소요시간 : 평균 4개월

취미 TIP :  직장인 극단에서는 전체 공연을 올리는 공연반 외에도, 뮤지컬 넘버 몇 가지만 배워서 발표를 해 본다거나, 기초 발성만 배우는 등 작은 클래스를 많이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공연에 도전하기가 부담스럽다면 작은 클래스를 먼저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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