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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Sep 22. 2023

한여름 밤의 꿈


“할머니 나 방금 꿈꿨는데 어떤 사람이 먹을 거 잔뜩 들고 우리 집에 오는 꿈 꿨어. 혹시 누가 진짜 오려나?”     

저의 들뜬 목소리에도 할머니는 ‘오긴 누가 오냐며’ 하고 있던 밭일을 계속하셨어요. 저는 꿈이 너무 생생해 꼭 누군가 올 것만 같았는데 말이죠. 꿈 이야기를 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포도나무 밑 그늘에 누워있었는데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렸어요. 꿈속에서 봤던 남자와 비슷하게 생기진 않았지만 짐을 들고 있는 모습과 체형까지 뭔가 꿈속에서 본 그 남자와 느낌이 비슷했어요. 저는 얼른 일어나 그 사람이 우리 집으로 오는 손님이길 바라며 언덕 아래쪽을 내려다봤어요. 저의 바람대로 그 사람은 점점 우리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어요. 내용물은 알 수 없었지만, 뭔가를 무겁게 든 건 확실했어요. 그 남자는 저희 집 마당으로 들어오며 물었어요.  

   

“안녕하세요, 여기 혹시 이소원씨 집 맞나요?”

“네. 맞아요!!”     


저는 한껏 신나서 그 사람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하며 몸은 이미 그 사람을 향해 마중을 나가고 있었어요. 어리둥절한 할머니에게도 얼른 집으로 들어가자고 손짓했어요. 땡볕이 내려 쬐는 무더운 여름에 먼 걸음 해준 그 사람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넸어요. 목이 많이 말랐는지 물 한잔을 단숨에 다 마신 그 사람은 주위를 한 번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어요.      


“이거 중국에서 소원씨 어머니가 보내준 거예요. 혹시라도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면 감시받을 수 있으니까 최대한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쓰세요. 다른 친척들도 주지 말고요. 어머니가 부탁했어요. 꼭 소원씨와 동생, 할머니 할아버지 갖다 드리라고요.”     


그리고 돈 봉투도 함께 건네주었어요. 할머니는 아직도 믿기지 않았는지 돈을 받고도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마지막 선물이라며 또 다른 봉투 한 장을 건넸어요. 그리고는 얼른 가봐야 한다며 서둘러 저희 집을 떠났어요. 여름밤의 단꿈인 줄 알았던 제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어요. 마치 예지몽이라도 꾸듯 말이죠. 사실 이외에도 제가 꾼 꿈이 실제로 일어난 일들도 적지 않았어요. 어쨌든 맛있는 중국 간식이 가득한 선물 박스를 보며 신난 저와 달리 할머니는 별로 기뻐보이지 않았어요. 행방불명 됐던 자식의 소식에 안심이 되면서도 그동안 맘졸이며 살았던 지난날이 생각 나서인지 할머니의 표정은 꽤 복잡해 보였어요. 할머니는 이윽고 마지막 선물이라며 주고 간 봉투를 열어봤어요. 저에겐 엄마, 할머니에겐 간절히 소식을 알고 싶었던 딸의 편지였어요.     


편지 내용이 모두 기억나진 없지만, 간략하게 내용만 이야기하자면 이래요. 말없이 부모님을 떠나와서 죄송한 딸의 마음, 그리고 어린 자식들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이 크다는 내용으로 죄송하고 또 미안하다는 내용이었어요.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조차 못하고 떠난 엄마의 마음은 오죽했을까요? 할머니는 어머니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어요. 편지를 다 읽고 난 후에야 할머니는 옅은 미소를 띄며 ‘이제 됐다.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저도 엄마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안도가 됐어요.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친척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그때는 너무 순수해서 아무것도 몰랐죠. 엄마가 살아있다는 기쁜 소식이 친척들간의 불화의 원인이 될 줄은 몰랐거든요. 


결국, 모든 게 다 그 돈 때문이었어요. 어쨌든 저는 그 일이 있고 난 후 엄마의 생사를 확인했다는 것 말고는 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졌고, 정부로부터의 감시도 더욱 심해졌어요.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도와 장사를 시작했고 소녀보다는 억척스럽고 어른스러운 소녀로 살아야 했어요. 누구보다 억척스럽게 살아왔지만, 마음만큼은 여린 소녀였던 어린 날의 제 모습을 생각하면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코끝이 찡하기도 해요. 책임감 강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그때의 경험들이 있어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어요.   

  

가끔 고향에서의 추억들이 꿈속에 나타날 때가 있어요. 지금 저에겐 유일하게 가족들과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꿈속이에요. 꿈이지만 가끔은 현실로 착각할 정도로 생생해서 깨기 싫은 적도 많아요. 꿈속에서나마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추억을 느끼는 것은 저에게 유일한 희망이자 행복이에요. 꿈속에서라도 가족의 안부를 묻고 얼굴을 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것들이 변했을 제 고향 청진,  눈을 감기 전에 꼭 한번 고향 땅을 밟아보고 싶어요.   

            

*참고: 탈북하기 전 엄마의 소식을 처음 알게 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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