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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Sep 26. 2023

살아야 했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물어요. 어떻게 그 힘든 순간들을 버틸 수 있었냐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늘 같은 대답을 해요. 살아야 했고, 그 상황을 이겨내야만 했다고요. 잘 이겨내는 기적 같은 방법은 없어요. 단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는 것 말고는요. 사람은 환경에 따라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해요. 상상해보신 적 있나요? 몇 평 되지도 않는 철창 속 단칸방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지내는 일. 방과 화장실의 구분이라고는 겨우 중요 부위만 가릴 정도의 낮은 벽이 전부인 곳. 철창 속에 갇힌 동물처럼 때 되면 주는 밥을 먹고 마치 주인이 찾으러 와야만 나갈 수 있는 동물처럼 나갈 수 있는 날만 기다리며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삶. 날 선 사람들과의 생활은 적어도 성인 되기 전 저의 기억으로는 그곳은 공포스러운 곳이었어요. 천장에 튀어 있는 빛바랜 핏자국과 때로는 날 선 어른들의 싸움은 저를 더 공포스럽게 만들었어요.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모두가 예민해져 있는 그곳에서 자칫 행동 하나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거든요. 낡고 얇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울기도 하고 담요에서 나는 냄새를 피하려고 코만 내놓은 채 눈을 질끈 감기도 했어요. 그곳에서 두려움에 가득찬 저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은 작은 수첩과 볼펜뿐이었어요. 좋아하는 노랫말을 적기도 하고 시인처럼 제 나름의 시를 적으며 매일 버텼어요. 가끔은 어른들의 괴성이 오가는 소리가 들려도 더이상 놀라지 않았어요. 그저 담요를 뒤집어쓴 채 쥐 죽은 듯이 있었어요. 처음엔 싸움이 나면 어찌할 바를 몰라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때 어떤 분이 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조용히 한마디 건넸어요.


 “내버려 둬. 괜히 말리려고 했다가 네가 다쳐.” 


그분의 말에 뭐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 라며 눈치를 살폈던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했어요. 자유가 없는 감방에 갇힌 그곳에서 나갈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에게서 나오는 예민함과 폭력적인 면들은 억압된 자유와 기본적인 인권이 사라진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살기 위해 태어난 고향을 떠나왔는데 타국에서 죄명도 모른 채 다른 죄수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으니까요. 어린아이도 어른도 아닌 청소년인 저의 시각으로 봤을 땐 적어도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들이 죄수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었어요. 무엇보다 너무 열악한 환경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있었으니까요.  

   

저는 다행히 다른 분들보다는 조금 일찍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어요. 제가 그곳에서 보호자도 없이 낯선 이들과 함께 지내며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한가지에요. 살아야 했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 외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가끔 화가 난 어른들이 하소연 하듯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 라는 말을 스치듯 듣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저는 제 목숨이 너무 소중했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죽음 자체가 너무 두려웠기에 저는 무조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죠. 어쨌든 많은 분들이 저에게 질문한 답에 대답해드린다면, 제 인생에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서 잘 버틸수 있었던 이유는 제 목숨이 소중했고 삶이 소중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거 아세요? 사람이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평소에는 복잡하고 흐릿하게만 보이던 길이 너무도 선명하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는 걸요.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 시작과 끝 이렇게나 선명하게 나뉘는 선택의 기로에서 말 그대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유명한 대사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지 그대로 삻을 끝을 낼지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달려 있어요. 저는 무조건 새로운 삶을 시작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희망 하나로 그 힘든 시절을 버틸 수 있었고, 지금의 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인생이 너무 힘들고 지친 분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감히 그 힘듦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어쩌면 내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홀로 고독하게 힘들어하고 있진 않은지, 그러니까 제 말은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간단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어른들은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살기 때문이에요. 어린왕자에 나오는 대사처럼 어른들에게는 항상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유와도 같아요. 어쩌면 눈에 보이는 그것이 전부일 수도 있는데 꼭 그 속에 또 다른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또 다른 의문점을 제기하거나 추측하는 것 말이죠. 너무 어렵고 복잡한 상황일수록 오히려 간단하게 본질적으로 접근하라는 뜻이에요. 할지 말지 이것만 보면 매우 간단해지니까요. 알고보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인데 우린 가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에너지를 쓰며 시간 낭비, 감정낭비를 해요. 기억해요 어쩌면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삶과 죽음 시작과 끝, 희망과 절망 중에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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