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것도 없으면서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A는 출근을 하자마자 새로 들어온 여직원에게 괜히 틱틱댄다. 그리고 평소보다 과한 웃음으로 주변 동료와의 친분을 과시한다. A는 저녁에 있는 동호회에서도 갓 가입한 여자 회원을 내리까는 눈빛으로 목례만 날리고는 다른 회원들에겐 터치까지 해가며 몹시도 즐거운 양 웃어댄다. 그렇게 떠들고 놀다가 귀가를 하고는 딸의 부어 있는 눈을 보게 되었다. A는 딸에게 뭔 일이 있었냐며 물었고 딸은 학교 댄스 동아리에 있는 언니들의 텃세가 너무 심해서 속상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자주 회상하곤 하는데, 특히 시댁에서, 군대에서, 학교에서, 모임에서 그 무리와 집단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 힘들었던 일화는 이야기의 단골 메뉴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뉴페이스를 챙기는 행동은 잘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척하려 애를 쓴다. 그렇게나 욕을 했던 그 때 그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오래 전에 한 직원이 B팀에 입사를 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직원을 특별히 신경을 써주었다. 사실 B팀에는 소문나게 텃세부리는 여자가 두 명 있어서 팀원이 들어오면 몇 달을 못버티고 나가기 일쑤였고 다른 팀 여직원도 비슷한 피해 사례들이 있었던터라 내몰라라 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난 뒤 그 직원은 자신은 운이 좋았다며 나에게 적응 잘 하게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을 했다.
나는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텃세가 일종의 불안 증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새로운 사람을 경쟁자로 인식을 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받을까봐 경계하는 마음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여유가 있고 행복하면 타인에게 저절로 친절해진다. 텃세 부리기같이 못되고 유치한 심보를 부릴 생각도 못하게 된다. 스스로에게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그런 행동을 할까 생각하니 측은해지기도 하지만 그런 행동들로 상처받는 수 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그런 동정조차 사라진다. 자신의 나쁜 행동에 대한 업보를 가족이 돌려받는다면 쉽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좋은 얼굴로 웃어주는 것, 그것이 뭐가 어려워서 서로 으르렁거릴까. 타인에게 좀 더 친절해보자. 행복해서 친절해질 수도 있지만 친절해서 행복해질 수도 있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