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을 지키려면
맹자의 성선설이냐 순자의 성악설이냐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사실 선과 악은 구분짓기도 모호하고 악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선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과 악의 기준을 세우고 선을 추구해야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움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공존하기 위해서이다. 곧, 선은 더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악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서 특정인의 이익만을 위함으로 판단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선이 늘 악을 이긴다고 배웠지만 악이 활보치고 다니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가령 정치질에 능숙한 악독한 부장이 승승장구하는 꼴을 보게 되거나 멀쩡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어 왕따를 시키는 모습을 말이다. 가해자는 뻔뻔하게 다니는데 피해자가 오히려 숨어지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악이 계속해서 퍼지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주체성과 판단력이 없는 사람들 때문이다. 다시 말해 쉽게 선동당하는 우매함 때문이다. 통찰력과 분별력이 없이 그저 자기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는 자는 악행을 저지르는 자에게 더할 나위없이 좋은 먹잇감이 된다. 거짓말을 하면 처음에는 의심하지만 반복되면 믿기 시작하고, 헛소문을 먼저 퍼뜨리고 상대가 반박할 자료를 만드는 동안 군중은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는 괴벨스의 말처럼 악은 악한 자의 것만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와 같이 만든 합작품인 셈이다. 역대급 더러운 대선에서도 공약이나 미래는 안보고 당이나 사람 자체를 물고 빠는 사람도 있었고, 아직도 백신은 모두를 위해 무조건 맞아야 된다고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선사업 한다는 억만장자를 좋게 평가하며 사실로 드러난 악행조차도 음모론이라 치부하고 맹신하는 사람도 있으며, 약자는 늘 선하다고 착각하여 불쌍하게 여기며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 설치는 사람도 있다. 맹한 사람은 구제가 안된다.
악이 곳곳에 도사리는 두번째 이유는 선한 자들의 적절치 않은 용서와 관용이다. 오래 전, 회사에 한 팀에서 선량하고 똑똑한 직원들이 꾸준히 퇴사를 하는 일이 발생해서 그 이유를 캐보았다. 문제는 악질 팀장의 만행이었고 나는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몇차례나 말을 했지만 일을 크게 키우기 싫었던 사장은 그 팀장이 능력있고 필요한 사람이라며 옹호를 해댔다. 오히려 어린 직원들의 부적응이 문제라고 공식화했고 나는 그 팀장을 끝까지 벼르다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큰 사건을 다시 보고하게 되었다. 사장은 회사에 피해를 입고서야 그를 해고했고 군자인척 용서와 관용 좋아하시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게 되었다. 간첩과 도둑을 풀어준다고 그들이 고맙다며 개과천선될리 만무하듯이 통합이니 화해니 평화니 해도 결이 다른 사람과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다. 그들은 오히려 그런 것을 기회 삼아 더 신이 나서 악을 퍼뜨리고 다닌다. 싹을 잘라내는 단호함이 없다면 앞으로 못나가고 늘 덩쿨 속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썩은 사과는 도려내는 수 밖에 없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을 지나치게 강압적이라고 욕해서도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선이 이기는 경우가 조금 더 많다고 해도 그 광경을 목도하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과 희생이 소모된다. 악은 질기다. 어디에서든 잡초처럼 살아남을 것이다. 악함이 세상에 발을 못 붙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악함에 휘둘리지 말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를 접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며 늘 이성을 가지고 깨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혹여나 악을 접하게 되었을 때는 외면하거나 감싸주지 말고 사태를 정확히 분석해서 제대로 처단해야 한다. 좋은게 늘 좋은건 아니다.
이성이 잠들면 악마가 깨어난다 - 프란시스코 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