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by Norah

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 박찬국



카페나 식당, 상점에 갈 때마다 나는 거기에 있는 그림이나 조형물을 유심히 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은 거기서 나오는 음악이다. 예술이란 고통이 가득한 우리네 인생사를 직면함에 있어 산소같은 가치가 있다. 예술과 함께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의 질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염세적임은 희미해지고 삶을 밝게 바라보는, 허구적인 평등주의를 외치지도 위선적임도 없는, 아폴론적임과 디오니소스적임을 다 갖춘 나라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음에 한없이 감사하다.


신간도서. 너무 맘에 든다. 진심 흥미롭다. 간만에 몰입해서 한번에 다 읽어버린 책.




<좋은 문구 발췌>


니체는 인간은 과학이 드러내는 세계에서 살 수 없고 예술이 드러내는 신화적인 세계에서만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보았다.


참으로 강한 자는 변화와 갈등과 투쟁을 즐기는 자다.


니체는 우리가 디오니소스의 충만한 생명력과 하나가 될 것을 요구한다. 춤추는 신인 디오니소스처럼 그 모든 고통과 고난에도 이 세계를 긍정하면서 유희하듯이 살라는 것이다.


아폴론적 예술은 건축, 미술, 조각, 서사시처럼 창작자와 감상자에게 사물을 조용히 관조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조형예술이다.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서정시, 음악, 춤과 같이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면서 우리를 뒤흔드는 예술이다.


마야란 망상 또는 환상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다.


니체는 학문보다는 예술, 그중에서 특히 음악을 통해 세계의 비밀이 드러난다고 본다.


생명력은 근본적으로 의지와 동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이 음악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성은 욕망에 존속되어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올바른 논변을 개발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이익에 호소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쇼펜하우어에게 이상적인 인간은 자신의 무한하고 맹목적인 욕망을 이성을 통해서 부정하는 금욕주의적인 인간이다. 이에 반해 니체에게 이상적인 인간은 자신의 넘치는 힘을 절도있게 발산하는 인간이다.


쇼펜하우어는 정치를 포함한 모든 사건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면서 예술 그 중에서도 음악을 인간의 모든 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간주했다.


힘을 향한 의지가 강한 인간만이 세계를 아름답게 본다.


예술이란 삶의 자극제다.


비극이 주는 메시지는 건설과 파괴를 거듭하면서 놀이하는 세계의 충일한 생명력을 닮으라는 것이다.


니체는 마르크스주의는 그리스도교적인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았다.


그리스인들은 경쟁과 투쟁을 인간사회뿐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로 보았다.


사회주의자들 같은 평등주의자들은 부자들에 대한 가난한 자들의 시기심과 원한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고 대중 위에 군림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런 평등주의자들을 타란툴라라고 부른다. 타란툴라는 이탈리아 타란토 지방에 사는 독거미다.


강한 인간은 위대한 성취를 위한 고통을 즐긴다.


강한 자는 사람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도 악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경쟁과 갈등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 - 헤라클레이토스


염세주의는 세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염세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이 힘을 향한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생긴다.


소크라테스는 덕은 지식이다, 죄는 오직 무지에서 비롯된다, 유덕한 자는 행복한 자다라고 말했다.


니체는 이러한 지식 추구도 생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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