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리 자신 속의 독재자

by Norah

우리 자신 속의 독재자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진정한 자유란 틀이 없는 것이 아니라 틀에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것이다. 얽매여 있다는 말은 환경이나 외부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을 옥죄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 원인을 바깥에서만 찾으려한다. 어렵고 힘든 것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랑 아니면 두려움이라고 하듯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그 사랑의 시작은 받아들임이고 받아들임이 자유이며 자유는 언제나 진리이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은 언제나 나에게 커다란 영감을 준다.


<좋은 문구 발췌>


깨달음은 그 모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심리적으로 주관적으로 내면적으로 무질서 속에서 사는 한 우리가 하는 어떤 일도 무질서만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난 절대 증오하지 않는다 난 사랑하고 있다라고 말 한다면 이건 사랑이 아녜요. 이건 여전히 증오의 하나일 뿐예요. 이건 하나의 결심이고 사고행위죠. 사고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예요.


과거는 현재를 통해 자신을 수정하면서 미래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미래는 곧 지금이죠.

두뇌는 일종의 양식을 만들어 냅니다. 만약에 우리의 두뇌가 어떤 압력이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면 시간이란 변화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힘도 없고 가치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그 양식을 깰 수 있을 것입니다.


난 화가 났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나는 화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관념이 되죠.
만일 우리가 심리적으로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결코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명 어떤 신도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고 어떤 상징을 섬긴다거나 어떤 사람도 숭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자유로울 것입니다. 두려움은 또한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불안하게 하며 그로부터 도피하게 하는데 따라서 도피는 이제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됩니다.


두려움의 원인은 바로 시간 사고입니다.


사고가 감정으로부터 이미지를 만들어 낸 그 욕망이 있는 한 반드시 거기엔 이기주의가 있습니다.


우리의 두뇌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는 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슬픔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벌써 떠나고 있는 시간 앞에 아직 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 자비는 최고의 지성입니다. 책이나 학자나 경험적인 지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일정한 차원에서는 반드시 있는 것이지만 참으로 사랑이 자비가 있을 때 거기에는 모든 지성의 정수가 있습니다. 죽음이 없이는 사랑과 자비도 없습니다. 사랑 자비는 모든 것이 끝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창조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지나치게 칭찬하는 것은 그 장점을 귀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장점을 찾아낸 자신의 감각을 높게 평가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재능은 있어도 역겨운 사람들이 있는 반면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기분 좋은 사람들이 있다.


강이 바다에서 모습을 감추듯이 미덕도 이익 앞에서는 사라져 버린다.


장차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을 미리 염려하는 것보다 당장의 불행을 참고 견디는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이 더 낫다.


완전한 용기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해낼 수 있는 힘이다.


은혜를 베풀었으니 그에 합당한 감사를 받게 되리라는 생각이 종종 기대에 어긋나는 까닭은 주는 사람의 오만과 받는 사람의 오만이 은혜의 가치를 똑같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성급하게 은혜를 갚으로고 하는 것도 일종의 배은망덕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그가 설사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너그러운 눈으로 보려 한다.


취향이 변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기본적인 성격까지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광기를 치유하는 방법은 많지만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을 방법은 전혀 없다.


질투의 원인은 사랑이 아니라 자존심이다.


이성의 힘으로 불행을 이겨 내지 못할 때 우리는 허약함을 탓하며 위안으로 삼는다.


우리는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만을 상식 있는 사람으로 인정한다.


모든 장점이 도덕적 고결함까지 갖춘 것은 아니지만 도덕적 고결함은 그 자체로 장점이다.


소심한 성격을 고쳐 줄 생각으로 소심함을 나무라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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