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읽기
– 랄프 비너
나는 헤겔보다는 니체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철학이 기저에 깔린 괴팍스런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선호한다. 물론 공감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의 철학은 여러면에서 내 스타일이다.
나는 헤겔보다는 니체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철학이 기저에 깔린 괴팍스런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선호한다. 물론 공감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의 철학은 여러면에서 내 스타일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초집중이 요구되어 잠시 접고 가볍게 읽으려고 집어든 책인데 지속적으로 튀어나오는 작가의 해설이 오히려 산만스러운 감이 있다. 역시 철학책은 해석이나 의견보다는 철학자 본연의 글로 접해야 할듯.
<좋은 문구 발췌>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력을 겸손으로 위장한다.
잘못된 겸손은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도록 만든다.
중요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명성을 가져다 준 업적이다.
지혜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저 좋은 생각을 위해 멍석만 깔아 주라. 그러면 그것은 저절로 올 것이다. 짬이 난다고 무턱대고 책을 집어서는 안 되는 까닭도 바로 여기 있다. 우선 마음을 평안히 하라. 그러면 좋은 생각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엇보다도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상태, 평안과 여유를 추구할 것이므로 조용히 검소하며 가능한 방해 받지 않는 삶을 원할 것이다.
자기 안에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외부의 것을 덜 필요로 하며 타인에 의존할 필요도 적기 때문이다.
탁월한 사람일수록 비사교적이다.
교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가르치며 지혜가 있다는 평판과 명성을 구한다.
바보로 태어난 자는 바보로 죽는다.
황소는 뿔이 있어 받는 것이 아니라 받고 싶기 때문에 뿔이 있는 것이다.
너희는 여러 시간 동안 알아듣게 이야기해주어도 결국 항상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여자들 같지 아니한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도록 쓰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의미심장한 생각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부패한 언어의 속삭임에 속지 마라.
철학자나 작가가 결혼을 했다면 이미 그것으로 학문과 예술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인류 발전의 가장 큰 장애 중 하나는 사람들이 가장 현명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가장 크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참된 가치는 죽은 후에 비로소 드러난다.
만일 어떤 신이 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나는 그 신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비탄이 나의 가슴을 찢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소인배들은 딱하게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고결한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좋아할 수 없고 그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점점 더 고독을 선호한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자신의 장점을 무시한 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인양 어울리면 그들은 즉시 진심으로 당신을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종일 달렸어도 결국 도착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아니한가-페트라르카
철학을 위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철학과 관련된 모든 교수직이 폐지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엇보다도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상태, 평안과 여유를 추구할 것이므로 조용하고 검소하며 가능한 방해 받지 않는 삶을 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른바 사람이라는 존재를 좀 알고 난 후에는 은둔 또는 그가 위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일 경우 심지어 고독을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외부의 것을 덜 필요로 하며 타인에 의존할 필요도 적기 때문이다. 탁월한 사람일수록 비사교적이다.
바보로 태어난 자는 바보로 죽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가장 작은 일들에서조차 자신의 판단를 믿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판단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선입견과 결과론으로 판단을 대신하게 된다.
이 세상에는 거짓말하는 존재가 단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다. 반면 다른 모든 존재들은 참되고 정직하다.
아름답고 풍부한 정신을 가진 사상가는 이 세상과 같은 곳에서 그가 느낄 수밖에 없는 고독을 덜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기 위해 가능한 가장 자연스럽고 솔직하며 단순하게 말할 것이다. 반대로 사상이 빈곤하거나 혼란하고 괴팍한 자는 어렵고 화려한 미사여구 속에 작고 하찮고 속되고 진부한 생각을 숨기기 위해 매우 가식적인 표현, 매우 애매한 어법으로 말할 것이다.
상상력과 지적 생동성의 결여, 그것이 바로 그들이 혼자 있을 때에 웃지 못하는 이유다. 동물들은 혼자건 여럿이건 웃지 못한다.
우리는 각자 생긴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동은 성질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덩이 나빴다면 그것은 우리의 성질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성질은 당신이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벌은 당신 자신이 받아야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저 자살할 용기가 없어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무슨 대단한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만일 시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를 지복의 상태로 이끌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그런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무한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시간이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을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노예와 농담을 하면 머지않아 그자가 당신에게 엉덩이를 까 보일 것이다라는 아랍의 격언 역시 진지한 주제를 가볍고 재밌게 다룰 경우 발행하는 위험을 지적한 말이다.
칸트의 가장 큰 업적은 대상과 우리 사이에는 항상 지성이 개입해 있고 그러므로 대상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현상과 물자체를 구분한 것이다.
너희가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너희가 나에 의해 표상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결코 비방이나 경멸로 경쟁자나 적을 작게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직 스스로의 위대성을 통해서만 그렇게 할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을 작게 만든다.
철학자나 작가가 결혼을 했다면 이미 그것으로 학문과 예술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지력이 뛰어날수록 개성도 더 분명하며 이 때문에 자기의 개성에 상응하는 이성의 개성에 대한 요구도 더 분명하다.
인류발전의 가장 큰 장애 중 하나는 사람들이 가장 현명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가장 크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예의바른 것은 영리한 행동이다.
내가 있는 한 죽음은 없고 죽음이 있으면 내가 없다. 그러니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인가.
그때그때의 현재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우리는 거의 틀림없이 우스운 사람이 되고 만다.
우리는 언제든 쾌활해질 때마다 그것을 환영해야 한다. 왜냐하면 쾌활해지기에 부적절한 때란 없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나 이제 여정의 종착지에 지쳐 서 있다.
지친 머리는 월계관을 쓰고 있기도 힘겹구나.
그러나 내 한 일을 기쁘게 돌아보니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항상 내 할 것을 했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