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바다의 숙, 북쪽 바다의 홀, 중앙에 혼돈. 혼돈에게 놀러 간 숙과 홀은 혼돈의 후한 대접에 보답하고자 상의를 하여 사람들에게 있는 일곱 개의 구멍이 혼돈에겐 없으니 하루에 한 구멍씩 뚫어주기 시작하였으나 일곱째 날 혼돈은 죽어버렸다 - 장자, 응제왕 中
‘구멍이 없는 혼돈은 답답할 것이다’라는 것은 숙과 홀의 생각이다. 혼돈은 구멍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숙과 홀은 혼돈도 자신들과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그 판단은 혼돈을 죽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의 성격도 모두 다르듯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라고 우기는 것은 잔인한 일이 된다. 기준의 잣대에 따라 결과도 달라진다. 한국에서 보면 미국이 동쪽인데 유럽에서 보면 미국은 서쪽에 있다. 그래서 기준을 말하지 않고 시비를 따지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작년 5월에 있었던 일이다. 연휴라서 기도를 하러 2박 3일간 절에 머물렀을 때였다. 어떤 인상 좋으신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다가오시더니 같이 청소하기를 제안하셔서 좋은 마음으로 빗자루 질도 하고 창문도 닦으며 몇 시간동안 여러 명의 아주머니들과 청소를 했다. 청소를 끝내고 비구니 스님 방으로 가서 다함께 차를 마셨는데 나를 유심히 보시던 그 노스님이 질문을 하셨다. 자주 들어오던 결혼에 관한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 솔직하게도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솔직함이 그런 결과를 가져다줄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 노스님은 내 대답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며 그때부터 훈계를 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동안 스님의 말씀을 들었다. 생각이란 다를 수 있으니까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스님은 말씀 끝에 나에게 결혼을 하든지 스님이 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고 나는 차를 마시며 미소만 지었다. 스님은 내가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않고 있자 더 사나운 얼굴로 분개하셨고 비난의 강도가 거세지면서 나중에는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온갖 악담까지 퍼부으셨다. 같이 계시던 아주머니들도 민망하셨는지 아무 소리도 못하고 계셨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스님 말씀을 거들며 다 옳은 소리라며 나에게 그 잘못된(?) 생각을 바꾸기를 권유하셨다.
나는 그들이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가식을 떨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자리를 뜰 때까지 40여분 동안 표정 하나 찌푸리지 않고 미소만 보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말이 내 마음에 아무런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저 ‘연세도 많으신 분이 스님 생활을 그렇게 오래 하시고도 부처님의 중도를 아직 못 깨달으셨나보다.’, ‘저런 아집으로 사람을 본다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까.’하는 생각에 그 오히려 스님이 측은해졌다. 그 스님에게는 다름의 수용이라곤 없어보였다. 그저 내 말이 다 맞다, 나는 스님이니까 알아도 내가 더 많이 안다라는 편협한 생각으로 가득차 보였다.
스님의 그런 행동은 남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 스님 자신에게 가장 큰 손해일 것이다. 화가 나고 마음이 불편한 쪽은 내가 아니라 그 스님이었듯,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틀에서 벗어나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안다. 그래서 내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설득하려 든다. 이유는 없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틀은 본인 스스로가 판 무덤이다. 자신이 만든 틀때문에 자신이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의 굴레에 갇히게 되니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는 내 마음대로 막무가내로 사는 것이 아니다. 다름이 공존하는 곳에서 사는 것이다. 진짜 자유는 정신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람이 나아졌다고 하는 판단은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을 고집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사람은 그만큼 자유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
타인에 대해 자유를 부인하는 사람은 그 자신도 자유를 누릴 가치가 없다. 그리하여 그는 정당한 신의 밑에서는 자유를 오래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 링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