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by Norah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지식적인 측면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그의 세계관과 이념과 철학에 더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좋은 문구 발췌>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욕망에 따라 행동할 수 있지만 욕망을 의지로 결정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그의 말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내게 영감을 주었다. 끊임없는 위안이었고 삶의 고통에 맞설 인내심을 주는 마르지 않는 샘이기도 했다. 자유의지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면 가위 누르는 듯한 책임감이 덜어지고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지나치게 심각해지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유머를 사랑하는 인생관을 가지게 된다.


폭력은 언제나 저열한 도덕성을 가진 사람에게 매력적인 것이다.


인간의 삶에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창의적이고 지각있는 개인, 즉 개인성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고귀함과 숭고함을 창조하는 일은 개인의 몫이다. 소위 군중은 사고도 감정도 둔할 뿐이다.


나는 피조물에게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리는 신을, 혹은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의지를 가진 신을 상상할 수 없다. 육신의 죽음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하며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 생각은 공포와 어리석은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연약한 영혼을 위한 것이다.


남들 얘기를 들을 것이 아니라 직접 읽어보고 나서 자기 나름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자아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통찰을 그가 지녔는가, 그 해방감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2주 정도만 신문을 이용해 선동하면 양떼 같은 군중을 분노로 들끓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몇 안되는 이익 집단의 무의미한 목적을 위해 기꺼이 군복을 입고 서로 죽고 죽이도록 만들 수 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가 우리에게 던진 충고는 "지배하려 하지 말고 봉사하라"는 것이다.


모든 문명화된 민족, 특히 동양인의 종교는 대부분 도덕 종교이다. 공포의 종교에서 도덕 종교로 발전하는 것은 한 민족의 삶에서 위대한 도약이다.


인간의 윤리적 행위는 종교가 아니라 연민, 교육, 사회적 유대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공동체는 개인보다 양심이나 책임감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이 사실이 인류에게는 고통을 키우는 근원이더라.


인격이 형성되는 청년기에 지성의 연마를 중단하면 나중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틈이 생긴다.


동시대인들의 약점과 어리석음을 알아챌 만큼, 그러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을 만큼 독립적인 사람은 드물다. 고립된 섬처럼 존재하는 이 소수의 사람들마저도 인간의 완고함에 부딪히면 그들의 어리석음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정을 금세 잃어버리고 만다.


개인에 대한 숭배는 언제고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건전한 한계를 넘지 않아야 하고, 모든 아이들에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임금은 소비재의 가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높아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원로원 의원들은 모두 착하나 원로원은 사악한 짐승이다.


초개인적인 생명을 신성시하면 영적인 모든 것에 대한 경외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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