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명상,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

by Norah

명상,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 - 오쇼 라즈니쉬





우리는 육체와 정신이 아닌 어떤 영적 활동을 하고 있는가. 나 자신을 지속적으로 주시하고 내가 없음을 알아차릴 때 가질 수 있는기쁨은 무엇과 비교될 수 있을까. 아는만큼 보인다.





<좋은 문구 발췌>



깨어있는 의식을 갖고 있다면 무엇을 하든 모두 명상이다.


진정으로 명상적인 사람은 언제나 유쾌하다. 그에게 있어서 삶이란 흥겨운 놀이와 같다. 삶은 하나의 놀이이며 유희(leela)이다. 명상적인 사람은 삶을 철저하게 즐긴다. 그는 심각하지 않으며 릴랙스되어 있다.


혼자 살 때 우리는 기껏해야 슬프고 외로울 뿐이다. 그런데 둘이 살면서부터 완전히 지옥이 된다.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최고의 지성인도 타인은 지옥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타인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며 차라리 혼자 사는 게 훨씬 낫다고 말할 정도로 비관적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를 놓고 볼 때 그의 말은 옳다. 그러나 명상이 함께 하면 타인은 그대의 천국이 된다.


명상이란 단어가 없는 삶, 비언어적인 삶을 의미한다.


사랑이 활발하게 살아 있을 때에는 언어가 끼여들지 않는다.


신은 특정한 하나의 대상이 아니다. 이 존재계의 전체성이 신이다.


주시자는 방관자가 아니다. 주시자는 직접 참여하면서도 빈틈없이 깨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주시자는 위무위의 상태에 있다. 이것은 노자의 말로 함이 없이 하는 것을 뜻한다.


어떤 사람이 그대를 모욕하면 그대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붓다를 모욕해 보라. 그는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한다. 반응은 다른 사람에 의존한다.


만일 그대가 깨어 있지 않다면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다. 그대는 억압하거나 탐닉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대는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의 그대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고 하지 말라.


장미는 연꽃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장미꽃은 장미꽃으로 존재하는 것으 절대적인 행복으로 받아들인다. 그대가 연꽃의 아름다움을 늘어놓으면서 부추겨도 장미꽃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장미는 자신의 존재에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시간은 욕망에 의존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그대의 욕망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마음을 멈추려고 애쓰지 말라. 다만 그대의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켜보라.


종교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멍청해진다. 그들은 거의 바보천치가 되었다.


정상에서는 모든 길이 하나로 만난다.


신은 사랑이다.


만일 그대가 긴장과 번뇌를 상상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 때 긴장과 번뇌는 사라질 것이다.


실재로 받아들여진 것은 무엇이든지 실재가 된다. 그리고 허구로 받아들여진 것은 무엇이든지 허구가 된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왜 걱정하는가. 그 순간이 오면 어차피 그 순간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때 가면 어차피 그 순간과 직면할 것이다.


나 자신을 주시하면 할수록 에고의 허구성이 더 깊이 느껴집니다.


그대를 자기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명상이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주의하라. 나무는 가톨릭 성직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타인들만 주시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주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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