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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Nov 20. 2019

행복의 기준

진짜 자기계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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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요즘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객관적으로 불행하고, 주관적으로 행복하다는 이 역설을 설명 해야되서 더 그런것 같다. 



그렇다.

요즘의 나는 객관적인 불행함이 있다.

남들이 보고 평가하기에 뒤따르는 불행들이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내면에는 행복감이 항상 차 올라있다. 


© heytowner, 출처 Unsplash






어쩌면 우리는 외부의 모습속에서 행복의 기준을 찾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것만 같다.

저 사람이 대화를 하면서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를 행복의 척도로 퍽이나 쉽게 결정해버린다.

빠른 판단과 결정은 나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른 판단력을 리더십의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가르치지 않던가? 

그래서 우리는 행복마저도 이렇게 빠른 판단의 전문가가 되어버렸다.




© phammi, 출처 Unsplash






이 판단에 걸리면 행복한 사람은 정말 소수가 되어야 한다.

현재의 급여기준은 어떻고, 어디에 살고 있지, 이 사람은 무슨 옷을 입었고, 지금 이 사람이 먹는 음식은 무엇이며 그 사람의 부모는 무엇을 하고, 어디 출신이고.. 이런 수 많은 잣대들 속에 살아남은 단 한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Greyerbaby, 출처 Pixabay







그런 관점이라면 나는 현재 불행하다.


나의 급여는 현재 예전보다 더 좋지 못하다. 

나는 강북에 살고, 옷을 요즘 사 입지를 못한다.

좋은 식당을 가본지 꽤 되었고(오찬회동 정도.)

우리 부모님은 좋은 직업을 갖지 않았다.

나는 도봉구에서 태어났고, 

명문대 출신이 아니다.


나의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보았을때 나는 현재 불행하다고 결론짓는 것이 맞다.







그런데 아니었다.






© brucemars, 출처 Unsplash






나는 엄청 행복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행복은 나의 내면에서 피어나오기 때문이다. 진실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나의 급여는 예전만도 못하다. 하지만 나는 미래 산업, 콘텐츠 분야의 한 곳에서 장기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5년을 고생해서 50년을 먹고 살 자산을 만들어갈 상품을 개발하는 중이다. 

나는 강북에 산다. 하지만 나는 이곳이 좋다. 이 곳에서 태어나 자라나서 매일 볼 수 있는 풍경이 나를 이 곳으로 이끈다.


최근 옷을 사본적이 없다. 그런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옷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 쓸데없이 챙겨놓은 옷이 우리집에는 거의 없다.

좋은 식당에 가지는 않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혼밥을 먹어본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내 주변에는 항상 밥을 같이 먹어줄 사람들이 있다.


우리 부모님은 좋은 직업을 갖지 못했다. 아버지는 '삼겹살'집을 운영하는데, 고기가 정말 맛이 좋다

된장찌개와 같이 밥한술을 뜨며, 두툼한 삼겹살을 먹어주면 정말 기운이 절로 솓아난다. 

우리 어머니는 부동산에서 땅을 판다. 나이가 65세 이신데도 불구하고, 꽤나 땅을 잘 파신다. 

교회도 열심히 다니시고, 매일 새벽기도를 하시며, 건강하게 일하시고 계신다. 엄마는 경제 생활을 즐기면서 하신다. 나는 이런 긍정적인 엄마의 성격을 타고나서 매번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명문대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명문대처럼 학교를 다녔다. 차석으로 졸업을 하였고, 매번 매 학기 최선을 다해서 편입생이지만 학교 대표로 뽑혀 유엔대회에도 참여한 적도 있었다.





© wildlittlethingsphoto, 출처 Unsplash






나는 나의 꿈을 향해 살고 있다.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충분히 믿어주고, 돈 때문에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일절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외로움이 안느껴진다. (그것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않아서 그들이 서운해한다는 문제가 생기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는 행복하다. 



행복은 개인의 기준이다.

아무리 객관적인 조건이 안 좋아도 당사자가 행복하면 그는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 

행복은 개인만이 아는 조건이니깐.


그러니 누구를 만나도 우리는 판단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안좋은 상황이라도 그 누구는 행복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에 가서 그 사람들을 가엾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가여운 것은 동정이라는 착각속에 빠진 그들의 우월성이다.






© lucistan, 출처 Unsplash







또 한가지.





누군가에게 스스로가 행복해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만큼 멍청한 행동은 없다.

행복은 스스로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끌어땡길수록 행복뒤의 어두운 불행은 반드시 찾아온다. 

결국 인생에서 행복과 불행의 교합에서 0이 자꾸 수렴되는 이유는 억지 행복을 끌어땡기는 인위적인 나의 노력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잊지말자. 


그건 행복의 태생조건에 결코 없던 내용이라는 것을.



당신이 정말로 행복하다면, 그것을 강조할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다.

행복은 그저 행복이다. 

보여주는 행복이 아닌 발현되는 행복을 느껴라. 

그러기위해서 기억해야할 단 한가지는 



내 행복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 




이것 하나 정도만 기억해보면 어떨까?





2019. 11. 20 자유리 일기



#행복의 #조건은 #없다 #다만 #행복의 #기준은 #있다





당신의 행복을 조금 더 깊이있게 돌아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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