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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Apr 22. 2018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18번째 방법

또라이는 사랑을 착각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 외로운 연극의 시작.



오전 7시 36분, 도착했어야 할 길음역에 1분이 늦었습니다. 정말 초조해지는 기분을 뭐라고, 이야기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내 안에 엄습한 불길함과 초조함을 차가운 지하철은 이해해주지 않았습니다. 예정된 시간에 정확하게 도착한 길음역 그곳에, 역시 우려했던 것처럼, 저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1분이 늦은건 저의 잘못일지 모릅니다. 기대하고 다가간 저의 잘못일 수도 있겠죠. 그렇게 당시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내 여자친구는 지하철을 타고 가버립니다.




사귄지 몇년의 시간동안, 매일 매일 하루도 빼지 않고 그녀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출근을 하는 지하철에서 제대로 세수도 하지 못한채, 뛰어 나와야 했지만, 그녀의 손을 잡고, 아침의 출근길을 함께가는 그 시간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나의 사랑은 불현듯 시작된 연극이었습니다.

4월의 어느날, 수유역 길거리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그 순간, 꽃 나무하나 없는 메마른 거리에 분명 벛꽃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녀가 너무 예뻐보이더군요. 감히 이야기해보지만, 내 삶과 이 순간을 모조리 바꾼다해도 후회하지 않을정도로 저는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그녀를 만난 첫날, 저는 집에 와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설레며, 뛰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였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혼자 키드득 웃고, 그녀에게 했던 행동들을 다시 곱씹으며 혼자 몸서리도 치고, 난리도 아니었으니깐요.




 연극 무대위에 올라온 남녀의 주인공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기 마련입니다. 이미 이 연극에 남자 주인공이 된 저에게 남은 모든 사람들은 조연이 되어버립니다. 절대 그녀를 대신할 수 없으니깐요.그런데 안타깝게도 제 연극은 희극이 아닌 비극이었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올라온 연극무대에 저는 초조하게 여자 주인공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기다리는 그 여자주인공이 올라오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관객은 모두 저를 처량하게 지켜봅니다. 그 시선을 받아가며, 저는 3년이 넘는 시간을 혼자 연극무대에 서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깊은 사랑에 빠진 단 하나의 죄로, 너무나도 외로운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1분만 지나도, 기다려 주지 않았던 그녀는 저는 너무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절대 먼저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문자를 보내면, 1시간이 지나도 답이 안올때도 많았습니다. 나는 답이 오기를 기다리느라, 다른 어떤 일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결코 전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녀가 싫어할지도 모르니깐요. 내 사랑의 과분이 넘쳐서 그녀가 떠날가봐 늘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저를 더 외롭게 하더군요. 이게 얼마나 환장할 노릇이냐면요. 제 병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의사가 세상에 한명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의사에게 절대 부탁을 못합니다. 그 의사가 가볍게 진단한번 해주면 되는 일인데. 속은 곯아 터져나가고, 고통에 몸부림치는데 말이죠. 그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게 더 차갑게 말했습니다.



“제발. 다른 의사를 알아보시면 안될까요?"







참을만큼 참았지만, 제대로 통제가 되는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그녀가 보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숨겨야 하는지, 왜 내가 우연히 이 사람을 만나, 이렇게 삶이 괴로워야 하는지, 나는 그녀를 사랑하였지만, 너무나도 사랑하였기에, 어쩜 그녀를 집착했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아침의 그녀의 순간들이 궁금했고, 그 사람이 너무 좋아 하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더군요. 저는 마음이 너무나도 허해서 언제나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면 제 주변 모든 친구들은 저에게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어차피 남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를 계속 반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말에요.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오는 그 공허한 기분은 지금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처음에 저를 위로해주던 제 주변사람들이 모두 한결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성율아. 정말. 헤어지는 것이 맞지 않겠니?”





# 비성숙한 사랑속에서 얻은 깨달음




저는 너무 어리숙했습니다. 사랑의 정의가 무엇인지 몰랐거든요. 그래서 마냥 희생하는 것이 사랑인줄 알았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나와 함께 있어주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였죠. 그런데 그게 비성숙한 사랑이라는 것을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를 놓치지 않기위해 성숙한 사랑을 경험으로 배우며, 10년의 길고 긴 연애끝에 지금은 나의 아내가 되어준 나의 그녀에게 그래서 처음에 참 많은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야기합니다.



비성숙한 사랑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에 빠지면 빠질수록 철저하게 내가 외로워진다면 사랑에 빠져 그 사람과 나만 보이는 세상의 단절을 만들고 있다면. 그리고 내가 가진 사랑이라는 능력 자체에 대해서 전혀 고민하지 않고 상대방의 사랑만 갈구 하고 있다면, 내 사랑의 의미를 오늘 한번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크게 착각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죠.





# 현대인이 착각하는 세가지의 사랑




여러분들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로 정의하시나요? 현대인들은 숙달된 자본주의의 시선을 사랑에도 끼워 맞춰 생각을 하곤합니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사랑에 대해서 차가운 잣대를 대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사랑은 주는 개념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앵무새처럼 사랑은 주는 거라고 이야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속에서 실제로 사랑을 주며, 삶을 즐기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모두 사랑을 받는 것에 집중을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아주 오랜 시간동안 우리가 훈련을 받았고 그래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그렇게 사랑을 착각합니다.




“엄마, 나 95점 나왔어요~!”


어린 학생이 시험이 끝난 날, 저 흔한 말한마디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있습니다.


"엄마. 저도 조건이 되었으니, 더 사랑해주세요. “


조건이 되었으니 사랑해달라는 말. 우리는 사랑을 받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내 삶의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상황이 안좋아서 사랑을 못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나의 사랑을 미루게 됩니다.


“이번에 취업하면 그때 연애할거야.” 


이 말이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생각이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제가 이 달에만 상담중에 3번이상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우리는 사랑받는 것에 집중하면서, 더 나은 조건이 되기위해 기꺼이 얼굴을 성형하고, 대학을 더 좋은 곳에 가려하고, 외제차를 사거나, 연봉을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세요.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더 큰 개념입니까? 아니면 사랑을 하는 것이 더 큰 개념입니까? 우리는 사랑을 받는것이 아닌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당신이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고해도, 당신이 몸이 불편한 사람이라고 해도, 당신이 가난하다고 해도, 당신은 이미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연봉이 몇천만원 이상이 되어야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내 삶에 사랑해야 할 사람은 너무나도 많지 않습니까? 오히려 부족한 것은 나의 조건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수 있는 시간입니다.




현대인은 그렇게 사랑을 착각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낯설게 들릴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능력이 있습니까?"

아마 이런 질문조차 우습게 들릴거에요. 당연히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능력이 있는것 아닌요? 그런데 우리같은 현대인들은요 정말 사랑에 대해서 능력이 부족한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 진짜 연애하고 싶은데, 맞는 사람이 없어.”




이런말 들어본적 없습니까? 요즘 사람들이 정말 많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착각합니다. 나는 사랑의 능력이 넘치는 데, 이 사랑을 줄 사람이 없다고 말이죠. 그 사랑의 대상은 대체로 뭘 의미할까요? 외모는 어느정도이고, 지역은 어디 출신이며, 연봉은 얼마를 받기를, 그 사람의 직업은 무엇이기를, 학력은 어느정도이기를, 성격은 어떤면이 두드러지기를, 이게 그들이 말하는 대상의 정의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세요. 이런 사고 방식은 우리가 어떤 물건을 고르고 구매할때 나오는 인간의 특성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나의 연봉은 5000만원이니까, 나는 어느 정도의 차를 사야 한다. 그래서 디자인은 어떤 방식이고, 브랜드는 어떤 것이고, 유지비는 어느정도 이어야 한다. 그것에 대해 서로가 적절하게 맞았을때 거래는 성사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본주의적 사고 습관은 우리에게 점점 사랑의 능력이 소멸되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게 합니다. 우리의 현재교육은 사랑의 진정한 방식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저 드라마 속에 나오는 운명의 대상을 기다리며, 나의 사랑을 유예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사랑의 대상은 넘칩니다. 우리가 편견없이 순진무구한 삶을 볼 줄 안다면, 사랑해줄 사람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정작 부족한 것은 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현대인은 그렇게 사랑을 착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랑은 어떤것에 불현듯 빠지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에 빠졌을때, 끊임없이 나의 사랑과 남의 사랑을 질투하고 비교합니다.

연애할때 상대방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의 정도를 늘 확인하려고 애씁니다.




“쟤가 더 좋아? 내가 더 좋아?”




이 말 한마디로 우리에게 모든것을 이야기하라고 하죠. 연극에 올라선 그들에게는 세상 누구보다 내가 우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빠지는 것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빠져버린 사랑은 반드시 그 끝이 있기 때문이죠. 둘만의 연애가 나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단순히 빠지는 행위에만 집중하게 되면, 오히려 더 크게 봤을때, 그 둘의 사랑은 세상과의 분리와 단절을 유발한다는 것을 이야기 드리는것입니다.





성숙한 사랑은 말이죠. 절대 상대방에게 나만을 위한 사랑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타인을 사랑하면서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진짜 사랑일까요? 성숙한 사랑은 나의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서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그 사람이 나와의 사랑을 통해 세상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개념이 세상과의 분리가 된다면 인간은 끊임없이 고뇌하게 되는 법입니다. 인간은 말이죠. 분리를 정말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분리를 조금이라도 더 채우기위해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저는 사랑을 통해서 세상과의 분리를 크게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당연히 삶이 불안했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삶이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피폐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은 빠지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신 사랑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듯한 특별한  주인공처럼 빠져버리는 것이 사랑의 모든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더 큰 개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봐줄 수 있는 것, 저는 그게 내 삶을 더 자유롭게 해주는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비성숙하게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제 아내에게 미숙한 행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순진한 사람이라 포장하기 보다는 찌질하게 사랑을 배워갔다고 이야기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사랑받기를 갈구했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어색한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전 사랑에 빠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해서 그녀를 위해 철저하게 세상과 나를 분리하였습니다. 그렇게 저의 일상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랑의 대상만을 갈구 했습니다. 내가 사랑을 할 줄 아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외면한채 말이죠.





# 사랑하기에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이건희회장, 정몽구회장, 워렌버핏..

 

이들에게는 비슷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끊임없이 돈을 벌려고 한다는 것이죠. “00기업이 2조를 벌어서 돈을 더 벌기 싫어서 이제 회장직을 그만 두려고 합니다." 이런 회장님을 본적이 있는가요? 아마 예외적인 분을 빼고 거의 그런분들은 본적이 없을 겁니다. 제 주변에도 1000억 이상의 자산가인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사람들은 내가 1000억 이상의 자산이 있으면, 그 정도로 모든것을 다 마쳤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난 지금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오히려 처음보다 열정이 더 솟아난다.” 저는 이분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봅니다.



“왜 인간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돈을 벌려고 할까요?” 단순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일까요?



저는 이 질문의 해답을 사랑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인간은 말이죠. 사랑받기 위해 돈을 버는 것입니다. 이 자본주의에서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나라는 약한 존재를 사랑으로 빠지게 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돈이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돈을 갈구하고, 자본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받기 위해서 말이죠.”


사랑은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내 삶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자유롭게 살기위해서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특별하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그저 사랑하고 사세요.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분들을 말이죠.

여러분 삶과 일상이 사랑으로 가득차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거 하나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드릴겁니다. 훨씬 더 자유롭고, 충만하게 만들어 줄것입니다.

제 일상의 변화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기에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10년의 연애를 끝내고, 결실을 맺은 어느 가을 날.



# 당신의 사랑의 능력을 올려주는 법 :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이 방식은 5명-7명 정도가 하기에 좋은 방식입니다.

상대방과 마주 앉아서 힘들었거나 고민이 되는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주면 됩니다. 이때 함께 하는 친구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좀 낯설거나 덜 친한 사람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은 아무렇게나 편안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때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끝말을 똑같이 하면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반복해서 이야기해보시면 됩니다. 행동을 함께 하면 더 좋습니다. 손가락 하트를 그리고 손으로 하트를 그리면서 이야기 하시면 효과가 더 좋을거에요.

굉장히 유치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거 한번 해보시면 느낌이 다릅니다. 타인에게 동시에 말로 듣는 것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랑을 말하거나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려보거나, 표현해보는 이런 작은 시도들이 사랑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좋은 방법이 되어줍니다. 사랑을 착각하지 마세요. 대상을 고민하지 말고,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정말로 사랑한다고 이야기 해주세요. 그게 당신을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진정한 사랑의 법칙이니깐요.





삶의 기복이 심한 당신이라면, 매일이 지치기만하는 당신이라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은 당신이라면,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http://bit.ly/바나나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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