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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Mar 10. 2018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여섯번째 방법.

또라이는 공포를 피하지 않는다. 직면한다.


공포 이해하기.


# 또라이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끝까지 파고들 뿐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죠. 바쁜일상, 반복된 하루, 변해가는 세상속에 발 맞추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라도 멈춰 있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불안합니다.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 주변에 늘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패턴화하고, 반복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 행동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니,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계속해서 그 행동을 고수하려합니다. 그것이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건 바로 우리가 공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공포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한 또라이는 여기서 다른 행동을 합니다. 그들은 불안해지는 감정에 속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공포를 끝까지 직면합니다. 자신이 두려워지는 것은 결국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것임을 그들은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포를 끝까지 직면해야합니다.




공포를 직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사업을 오랫동안 했던 사람입니다. 사업을 하면, 참 불안한 일이 많아 집니다.

"내일 당장 고객이 찾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 생각을 사업하면서 안해본적이 없습니다. 
“이번달 직원들 급여는 잘 나갈 수 있을까?” 이 걱정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또라이가 되기 전에 저는 사업을 하면서, 늘 불안했습니다.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자금도 넉넉치 않았기에, 하루하루가 전쟁과 같았습니다. 고객들에게 시달리고, 학생들에게 기계같은 차가움을 느끼고, 선생님들에게 무시당한일이 한번에 몰려오던 날, 뚝섬유원지에 가서 차안에서 3시간동안 실컷 울면서 견딘적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처량하지 않습니까? 차안에서 가슴시리게 울다가,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할까? 수없이 되물어보았지만, 눈물자국 남은 다음날 아침은 어김없이 다가오더군요. 운다는 것 자체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결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그 뒤에도 수없이 한강을 찾아가 울보의 역할을 자청하였습니다. 제가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온전히 또라이가 되기를 결정하고 난뒤, 저는 그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불안감을 느끼기 싫어 피하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내가 불안감을 벗어나기위해서는 공포를 피하는게 아니라, 직면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죠.그리고 이 불안감을 직면한다는 것은 내가 또라이가 되지 않는 이상 용기를 얻기 쉽지 않다는 사실도 말이죠. 



 사실 두려움, 불안이라는 것은 제거의 대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공의 반작용은 두려움이다. 그러니 두려움은 부쉬어버려야한다.” 이런 이분법적인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가 벽돌을 쌓을때 벽돌이 무너지는 상태가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두려움을 갖기에, 어떻게 하면 벽돌을 무너트리지 않을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결국 두려움도 내 하나의 감정입니다. 삶이 죽음을 수반하듯이 성공은 실패를 수반하고 용기는 두려움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내가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이용할 수 있을때, 나는 진정한 용기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 불안감으로 벗어나는 것은 기존의 틀을 깨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불안함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 빨리 불안감으로 부터 벗어나길 바라게 됩니다. 이런 행동의 결과로 우린 그 답이 잘못되어도 그 답을 잡고 있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만약 배가 아프면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하시나요? 한 3일간 아랫배가 꾹꾹찌르고 아프면, 어떻게 하시죠? 병원에 간다? 아님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아닙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전에 우리는 사소한 행동하나를 합니다. 그게 뭐냐구요? 바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죠. 검색의 결과가 좋으면 모르는데 만약 검색창에 ‘위암 초기증상’을 보면 어떻게 되죠. 




기분이 묘해집니다. 마치 지금 종이를 꺼내 유서라도 써야할 처참함이 밀려옵니다. 그치만 병원에 가보니 ‘변비’라는 초기 진단을 받으면 어떻습니까? 인터넷 검색을 통한 행위가 내 불안을 증폭하나요? 아니면 불안을 제거해주나요? 결국 잘못된 공포에 대한 대처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 같지만 같은 문제를 반복하면서 불안감을 증폭하는 원인이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불안감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린 늘 오답이라도 매달리려고하죠. 잘못된 것보다 불안한것이 더 싫은 인간의 심리 때문이죠. 이때 우리가 우리 감정에 속지 않기위해서는 꼭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 감정의 원인, 즉 불안감을 주는 요소를 명확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또라이는 자신의 공포에 속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라이는 진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기 때문이죠. 불안한 상태에서 우리는 자유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또라이는 인생에 몰입비용을 만들지 않습니다. 몰입비용(sunk cost)의 예는 여러곳에서 드러납니다. 내가 자유롭지못한 일을 10년을 했으면, 3년을 한 사람보다 사람은 변화하기 더 어렵습니다. 자신이 투자한 시간과 돈이 많을수록 포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그때 인간은 그 잘못된 답을 정답이라 믿으려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그 행위의 반복이 사람에게 도전을 무마하게 합니다. 기존의 틀에 타협하게 하며, 사는대로 살게 만듭니다. 



하지만 또라이들에게 몰입비용은 인생에서 중요한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삶을 즐기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아무리 댓가가 뛰어나도 그들에게 재미를 주지 않으면, 그 일을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쉽게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살다보면,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직면하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죠.





진지한 사람이 더 성공을 합니까? 아니요 진지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부담감만 줄 뿐입니다. 물론 직업의 영역에 따라, 달라질수 있겠죠. 저 역시 정답은 아니니깐요. 하지만 제게는 확고한 신념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모든 일을 해 나가면 우리에게 없어지는것이 생기죠. 그게 무엇입니까? “웃음”.”기쁨”,”행복” 아닌가요? 진지한 표정으로 10시간 넘게 일하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지하철을 탑니다. 진지하게 밥을먹고, 집에와서 잠깐의 미소를 짓는 30분의 여유와 함께 다음날 진지한표정으로 일어나죠. 도대체 우리가 왜 돈을 법니까? 전쟁터에 나가듯 매일을 치열하게 사는 것이 꼭 정답입니까? 



왜 우리는 일상이 행복해지면서 돈도 많이 벌지 못합니까? 그게 꼭 불가능한 일인가요? 아닙니다. 저는 완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현재 제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타고나서 그런걸까요? 아닙니다. 전에는 전혀 그런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저는 굉장히 자유스럽지 못한 삶을 10년간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자유롭습니다. 저는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며, 오늘 하루 아침에 웃으면서 일어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두려움이 축복이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 제가 저는 요즘 너무나도 좋습니다. 어떻게 저는 이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저는 예전부터 굉장히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는 너무 재미없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제가 가장 변할수 있었던 것은, 제가 두려울때마다 춤을 추는 습관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입니다. 이게 무슨 미친소리냐구요? 아니요. 진짜입니다. 어느날 저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 여성의 춤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적막한 도시에서 미친듯이 춤을 추던 그녀. 춤사위는 엉망이었지만, 볼품없는 그 춤에 저는 깊게 매료가 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의 숨소리가 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왜 기쁘면 춤추는거지? 춤추면 기뻐지지 않을까?” 





어느날과 같이 불안했던 날이었습니다.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은 사라진 그날. 저는 미친놈처럼 음악을 틀고 자유롭게 춤을 추었습니다. 춤사위는 엉망입니다. 누가봐도 창피합니다. 하지만 시선은 저에게만 집중하였습니다. 그때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안좋아 울고 싶은 날이 었습니다. 늘똑같이 한강을 가려고 준비했던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이후로 한강을 가지 않았습니다. 춤을 추고 나니, 몸이 너무나도 가벼워지는 저를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자유의 몸짓을 인류가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잠재되어있던 자유의 DNA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춤은 무의식과 의식의 교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춤을 춘다면, 공포와 두려움은 그 춤사위 앞에서 작아질것을 확신합니다. 춤을 잘 못춘다구요? 걱정하지마십시오. 유튜브에서 저의 춤을 한번 검색해보신다면. 여러분은 정말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중국 친타오에 놀러간적이 있습니다. 맥주공장을 체험하러 들어갔더니 무료맥주권을 주더군요. 거기에 가서 와이프와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제법 많은 독일부부가 저희 옆 테이블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술을마시다가 그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는지, 갑자기 일어나서 서로 흥겹게 춤을 추었습니다. 그 춤은 진정으로 막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그 춤을 보면서 눈물이 날것같았습니다. 그건 춤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두 부부의 인생이었고, 사랑이었으며, 서로 삶에 대한 애정어린 존중이 담긴 영혼의 소리이었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더 듣고 싶어서, 그 자리에서 몇시간 동안 술을 마시며, 그들의 춤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아쉽습니다. 저는 그때의 기분을 일어서서 춤을 췄어야 합니다.하지만 저는 두려웠습니다. 바로 타인의 시선이 말이죠. 하지만 그 두 부부는 오랜시간 서로만을 바라보며 춤을 이어가더 군요. 그들은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가둘 수 있습니다. 언제나 공포가 다가오는 날이 많을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진지한 얼굴로 무거운 마음으로 두려움을 맞선다면, 이미 당신은 두려움에 눌린거와 같습니다. 두렵다면 춤을 추세요. 기분이 안좋다면, 춤을 추세요.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흥이라도 표출하세요. 반드시, 가벼워지는 당신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보다 두려움이라는 녀석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춤을춰보면 반드시 알게될것입니다. 그러면 좀 더 쉽게 공포에 직면하는 힘이생깁니다. 그때 끝까지 공포에 직면해보신다면, 오히려 아시게 될 것 입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이 사실은 별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이게 또라이들이 두려움을 이길수 있는 비법입니다.

 

# 거절미션


커피숍에 가서 불현듯 이렇게 이야기해보세요. “커피가 맛있어 보이는데, 한잔 무료로 줄 수 있나요?”
자 이쯤 되면 모두가 우리를 또라이로 볼 것입니다. 하지만 당당하셔도 됩니다. 자존감을 세우는 최고의 방법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냉정하게 거절 당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누군가에게 거절 당하는 것. 이게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는지,  무너진 자존감은 남이 ‘우쭈쭈'해준다고 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존감은 스스로가 세운 공포를 직면해보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점을 바꿔보면 정말 많은 것들을 알게 됩니다. 거절을 직접해본 저의 경험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슈퍼에 들어가서 물좀 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상하게 저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게 물을 건내주는 따뜻한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막상 요청을 해보면 거절 당했다해도 생각보다 상처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제가 이걸 프로젝트를 하는 친구와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3시간을 주저하더군요.


저는 끝까지 기다려주었습니다. 그 친구가 두려움을 이겨내기를. 저는 그 친구가 할때까지 기다릴 각오를 했습니다. 결국에는 저의 의지가 너무크다보니, 스스로 포기하고 편의점에 들어가더군요. 그리고 당당하게 거절 당하며 나왔습니다. 그때 그 친구의 얼굴을 잊지 못합니다. 마치 지금껏 자신이 왜 두려워하기만 했는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더군요. 여러분 여러분은 거절을 당해본적 있습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큰 요청을 하고 당해보셨나요? 



여러분이 이 미션을 꾸준히 100일만 해보십시오. 생각보다 여러분의 요청은 능숙하게 변화 할 것입니다. 거절을 당하는 이 작은 행위가 당신을 또라이로 만드는 이 행동이 당신의 자존감을 바꾸며, 삶을 능동적으로 살 수 있게 바꿉니다. 안믿기나요? 지금 당장 해 보시길 바랍니다. 글보다 몸으로 익히세요.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삶의 기복이 심한 당신이라면, 매일이 지치기만하는 당신이라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은 당신이라면,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http://bit.ly/바나나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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