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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Sep 15. 2019

자본주의가 당신에게 주는 가장 큰 피해는 시선이다.

때론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당신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주는
아주 혁신적인 우리의 신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매년 9월이 되면 애플은 새로운 제품을 만듭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신제품은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기에 너무나도 충분해 보입니다. 팀쿡의 화려한 프리젠테이션 기술을 선보이기 한달 전, 이미 중고거래가 활발하게 돌고 있는 카페에서는 신제품을 앞두고 있는 기성제품에 대한 움직임이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그랬듯 이맘때 쯤이되면 우리는 얼리어답터라는 멋진 신분증을 손에 쥔 채, 산업 자본주의의 덫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그러나 한번은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어떤 시선으로 물건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삐딱한 자본주의는 생각보다 더 깊게 우리의 삶에 침투해 있습니다.



상업자본주의 소위 초기의 자본주의는 자본가의 잉여가치 생산에 있어서 큰 문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등가의 법칙이나 물물교환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할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힘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인류가 가진 공간의 제약을 통해 성장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상업자본주의가 아니었습니다. 18세기 이후 인류는 새로운 괴물의 출현을 바라보게 됩니다.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자본주의, 바로 이 녀석 이었습니다.


 


산업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최강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그에게는 인류가 가진 공간의 제약은 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류가 가진 시간의 제약 마저도 완벽하게 해결해주었습니다. 인간은 편리함을 한번 이해하는 순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강력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자본주의는 인류가 가진 숨겨진 욕망을 표면으로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산업자본주의는 이야기 했습니다.  


“새로움을 추구하라. 당신은 현재에도 이런 아픔이 있지 않는가?
이것을 써라.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아픔은 말끔히 사라질 것이다.”


그들은 이제 우리의 시간마저 통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갖추게 됩니다.

유행은 소비자가 만들어낸다는 착각을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유행은 생산자들이 노골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과연 이번 가을 시즌의 패션유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요?


이런 고민 해보신적 있으신가요?

유행의 원초를 쫒아가면 우리는 산업자본주의의 심장을 향해 걸어간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찌, 프라다가 수백년을 살아온 이유는 명백합니다.

유행을 선도하고, 시장의 판을 그릴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지요.





자 이제 무력한 우리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자본주의에서 우리가 물품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은 네가지가 있습니다.




아까 아이폰을 예시로 해서 한번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디바이스 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스마트폰을 쓰면서 카카오톡을 하고, 메신저를 보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활용합니다.

전화는 당연 가장 기본적인것이겠지요.

그래서 이 시선에서는 우리가 물품을 쓰는 첫번째 이유는 유용성이라는 측면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집을 사는 이유는 잠을 자는 공간이기 때문이지요. 자동차는 이동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선은 가장 기본적으로 형성 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유용성의 시선에서 제품은 일종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의 시선은 거래의 시선입니다. 누군가는 아이폰을 거래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중고 카페에서 10만원에 구매한 제품을 20만원에 파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제품이 나올때 새로운 제품을 넘어가려는 인간의 심리의 기저에는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제품의 가격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측면에서 사람들은 거래의 시선으로 제품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거래의 시선에서 제품은 하나의 상품이 되는 것입니다. 거래의 시선에서 우리는 가장 합리적인 사고를 하게 됩니다.


세번째 시선은 기호의 시선입니다. 이 시선이 산업 자본주의가 가장 좋아하는 측면입니다. 차는 도구의 측면에서 움직이고 이동하는 수단입니다. 거래의 수단으로 자산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때 차의 역할은 나만의 ‘부의 척도’가 되어줍니다. 이성을 유혹하기위한 방법이 되기까지도 하지요. 이 시선 속에서 물품은 “기호”가 되어버립니다. 산업 자본주의가 인류에게서 시간을 빼앗아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측면도 바로 이 기호의 시선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암묵적인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물품의 이름을 빗대어 우리는 이것을 신분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는 소비를 재촉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시선을 이야기 하기 전, 저는 한명의 철학자를 설명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위의 자본주의의 시선을 노래했던 철학자 보드리야르 입니다.

그의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보드리야르는 인류가 자본주의를 이겨낼 수 있는 한가지의 방법을 제안합니다.




생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도 없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당신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등가교환의 법칙은 과연 우주의 원리로 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어쩌면 인류가 만들어내고 생산해낸 편리성의 덫에 빠져
우리가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놓치는 것은 없을까요?

사실 신이 만들어낸 어떤 생명체도 인간처럼 물물 교환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공생을 나눌뿐, 물품을 나누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힌트를 한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 무엇을 교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합리적이라는 명목으로 인간은 두뇌를 사용합니다. 이성적이고 편리한 것을 쫒아 우리는 더 나은 삶을 꿈꿉니다. 그렇지만 종국에가서  한가지의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결국 인생에서는 그 무엇도 교환할 수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드넓은 해안가에 펼쳐져 있는 은빛어린 태양을 무엇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해맑게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바꿀 수 있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와이프의 손결은 얼마입니까?
엄마가 쉬고 있는 숨결은 도대체 무엇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햇초록으로 뒤덮힌 산책길의 가치는 과연 얼마란 말입니까?




보드리야르는 생을 마감하는 유언에서 다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인류의 끝을 다루었던 늙은 철학자는 최후의 순간, 오직 심미적인 감성을 갖추라는 따뜻한 시선을 노래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마지막 시선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품을 선물로 봐라. 이 모든 것이 선물이라면 당신이 하는 모든 거래는 기부에 가깝다.
 선물을 주는 것은 거래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증여이며, 증여의 관계속의 물품은 상징으로 태어날 수 있다.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 물품의 심장에는 따뜻한 인간적인 시선이 담겨져있습니다.

절대 깨질 것 같지 않은 산업 자본주의의 최대의 약점은 우리가 나약한 인간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사실이며, 나약하기에 따뜻한 한 사람의 감정만이 자본주의를 해결하는 해법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차가운 자본주의 속 당신의 심미적 감정의 끈을 놓치 말아라.




나는 철학을 사랑하고, 인문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수 많은 이들에게 내가 가진 감정이 차가워지는것을 경계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비록 따뜻한 내면의 감성이 약해빠진 아마추어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시대이지만, 당신이 가진 감정의 선끗이 살아남기위해, 생존하기위해 없어져야 하는 불필요한 수단으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거래할 수 없고, 그들은 수단으로 바라볼 수도 없으며, 그들이 결코 욕망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이말에 조금이라도 동의가 된다면, 이제 나는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 싶습니다.


그대가 가진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당신은 어떤 선물을 주었나요?

당신은 현재 어떤 상징을 사람들에게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진정으로 자의적인 당신의 감정선을 표현하고 있습니까?

당신. 당신에게 자본주의가 물들어준 시선은 네가지의 시선에서 어떤 것인가요?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잊지마세요. 애플은 내년 가을에도 또 신제품을 출시할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문제투성이가 된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말이지요. 자본주의는 우리 삶에 깊숙이 쳐박혀 있습니다. 당신이 염려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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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정선을 찾아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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