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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자헌 May 03. 2016

일상

출근길이다. 발목 통증이 점점 심해져 이제는 걷는 일마저 다소 힘들다. 어제 의사선생님 말로는 발목의 이름모를 뼈 한부분에 멍이 든 것 같단다. 계속 걸으니 점점 아파지는 것 같단다. 그 용하단 엠알아이까지 찍어보았거늘 듣게된 답이 겨우 '그런 것 같네요' 라니. 그럼, 이제 기다리면 낫는 건가요. 이미 일년을 기다렸는데요.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의사선생님도 딱히 답을 주지 못했다.


본래 여기저기 분주히 뛰어다니는 편이었다. 어렸을 적 잠이 많아 늦장 부리다 뒤늦게 서두르는 것이 습관으로 남았다. 대학시절에는 이런저런 알바를 많이 해서 시간이 빠듯했던 탓도 있다. 마음이 항상 급했다. 어머니는 내가 말띠 말날에 태어나서 그리 뛰어다니는 거라 말씀하셨다. 분주한 일상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과외하러 도서관서 신촌역까지 한걸음에 뛰고나서 숨을 몰아쉴 땐 무언가 열심히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


허나 돌이켜보면 분주한 척 산다고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마음이 급한 만치 겁도 많았다. 하고 싶은 일들을 앞에 두고 어디로 가야하나 발만 동동거렸다. 흙먼지 일듯 일상에는 미련과 후회가 따랐다. 그리운 사람이 있어도 마음으로만 연락하고 그쳤다. 언젠가로 미루는 일은 습관이 되었다.


몇 블럭을 두고 파란불이 보인다. 예전 같으면 놓칠세라 달음질을 했을 텐데 이제는 그냥 잰걸음 걷다 그친다. 교통카드를 찍는데 열차가 들어온다. 이제는 그냥 아까비 하고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그리 기다리고 있자면 한동안은 괜히 원통하고 아쉬웠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헌데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며칠 전엔 초록불을 놓친 덕에 우연히 전역한 병사를 만나 좋았다. 또 그날은 열차를 놓쳐 잡화상 아저씨를 만났고 휴대용 스탠드를 충동구매했다. 뛰든 걷든 여전한 나의 일상이다.


문득 여전함이 놀랍다. 여전히 어딘가를 향한 조급함에 시달리고 그리움을 미루는 습관에 비관한다. 늦장 부리는 습관은 조금 나아지려나. 이번 참에 미리미리 준비하는 인간으로 살아보길 기대하지만 여전히 아픈 발은 아쉽다. 언젠가를 기다리며 현재를 미루는 나의 일상에는 어디가 끝이라는 답이 없다. 오직 일상만이 있다. 오직 일상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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