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넘어갈랑말랑
하는 토요일 오후 봄날
무작정 집을 나섰어
우리 동네는 참 다 좋은데
도서관이 없다
할 일 딱히 없는 이런 날
슬금슬금 도서관 가
눈에 드는 몇 권 집어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읽다
한정식집 반찬 남기고 오듯
금방 슥 돌아오면 좋겠구만
하고 우왕좌왕 투덜대다 그냥
혜화동 동양서림으로
방향을 잡았지
거긴 우리 동네
엄청 오래된 서점이야
나는 뭐
학생 때 문제집 몇 번
어쩌다 시집 몇 권 산 게 단데
몇 년 전 언젠가 여기도
다른 서점들 따라
없어질지도 모른단 소문에
많이 놀랐던
그리고 어찌어찌 계속
해보려나 보네 싶었을 땐
안도했던 기억이 있어
딱히 보태는 건 없으면서
그래도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얌체 같은 마음이 있던 거지
하여간 가보니
서점에는 두어 명 있더라
역시 염두에 둔 책은 없었는데
눈에 드는 몇 권
집었다 넣었다 하다
평소 좋아하던 작가 수필집을 찾았어
신이 나서 읽으니
좋더라고
금방 슥 읽히고
사야겠다 싶었지
그런데 어라,
책을 덮으니 책 옆구리에
'갈매초등학교 도서관' 이라고
보라색 도장이 찍혀 있는 거야
게다가 웬걸,
책 맨 뒷 페이지에는
'마음이 열리고 미래가 보이는
목포 공공도서관' 어쩌고
큼지막한 스티커도 붙어 있더라
한 순간은
요즘 서점 사정이 어려워
중고 서적도 판매하나
하 참 그렇구나
고민이 많았겠다
아니 그럼
저 동네들 도서관은 어찌 되어
이 동네 서점까지 흘러들었나
여러 동네의 사정과
이 책의 사연을
상상하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갸웃거리고 일단
좋은 대로 조금 더 읽었지
그리 있기 슬슬 눈치가 보일 즈음
어찌 되었든 데려갈 요량으로
다른 두어 권이랑 해서
점원에게 이 친구 정체를 물었어
그분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많이 당황스러워하시더라
그리곤 다른 재고가 없어
이 책은 안 팔고
나머지 두 권만 계산하신다기에
오히려 나는 곤란해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파시라 했지
어찌 되었든 데려갈 마음이었으니까
근데 제값은 다 받으시더라
나중에 오면 새 걸로 바꿔주시겠다고
그렇게 서점을 나와
혜화로터리
횡단보도 앞에 서서
날은 여전히 맑고
이제 또 어디를 갈까 하다가
문득 궁금해
갈매초등학교를 검색해봤어
경기도 구리 어디쯤
잘 있나 보더라고
목포 공공도서관도
잘 있는 듯했고
다행이다 싶었지
그리고 나도
그간 동네 서점에 쌓인 빚
이렇게 조금 갚네 싶어
다행이다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