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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자헌 May 25. 2019

농담

이유선 원사님

소위 시절 이야기다. 교육소대 머물던 당시 점심 시간이면 이유선 원사님 따라 골프연습장 2층 식당에 자주 가곤 했다. 사장님 손맛으로 운영되는 작은 백반집인데 부대 고참 부사관 분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이 원사님은 "오늘 좀 춥다, 그죠." "오늘은 식사가 늦으시네요." 하며 정통대 원사님, 장비대 상사님들과 차례차례 인사를 나누셨고, 나도 원사님 뒤를 좇으며 꾸벅꾸벅 인사를 나눴다.


겨울이었던 것 같다. 그 날도 느지막이 식당에 들러 원사님과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문을 나서니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아주머니 한 분이 계단 물청소를 하고 계셨다. 아마 점심시간 마칠 때가 되어 청소를 시작하신 모양이었다. 이를 본 원사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어렵다는 듯 모양을 취하셨다. 그대로 계단을 밟고 내려가자니 청소한 자리가 군화 굽 모양으로 다시 지저분해질 테였다. 아주머니는 무심히 걸레질을 멈추고 우리가 지나가길 기다리셨다.  


"신발 벗고 갈까예?"


이 원사님은 안동이 고향이시다. 안동에서 올라온 따스한 말씨에 무표정하던 아주머니는 소녀가 된 양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셨다. 괜찮으니 어서 지나가시라, 아주머니는 손짓을 하셨고 아주머니 허락을 받은 우리는 실례합니다, 하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신발 벗고 갈까예,


내가 제일 사랑하는 농담이다. 지난 군생활 따르고자 했던 향기로운 마음이다. 오래오래 원사님 곁에 머물며 그 따스한 말씨를 배우고 싶었는데 벌써 이리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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