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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자헌 May 25. 2019

동네친구

오늘 하루 벌인 어리석음에 분통하고 속이 탔다. 집에 가면 그냥 씻고 잠들 것 같아 집에 가는 길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루가 다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동네를 헤매볼 요량으로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앞 칸에서 옆집 사는 친구 놈도 함께 내리더라. 친구는 핸드폰을 내려보며 익숙한 걸음 따라 계단을 앞서 올랐다. 나는 그를 불러 세우려다 어두운 기색을 내보이고 싶지 않은 탓에 주저하고 그냥 천천히 거리를 두고 걸었다.


친구는 출구로 걸어가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나도 뒤따라 올랐다. 결국 울적한 말이나 내뱉겠다 싶어 다른 골목으로 빠져야겠다 생각했다. 혹 우연히 뒤를 돌아본다면 모를까. 헌데 친구는 핸드폰으로 무얼 그리 빠져서 보는지 뒤를 돌아보긴 커녕 에스컬레이터 끝나는 자리에서 발을 떼지 않아 넘어질 뻔 하더라. 웃음이 났다. 어처구니없이 마음이 풀렸다.


친구는 바로 앞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담배를 살 요량이겠지. 나도 누나가 귀갓길에 사달라던 것이 생각나 편의점에 들어갔다. 마침 누나가 반기는 꼬깔콘이 투쁠러스원이었다. 셋 중 하나는 친구를 주어야겠다 하고 군옥수수 맛 둘, 고소한 맛 하나를 골랐다. 뭔가 아쉽다 싶어 어머니 좋아하시는 바나나킥도 집었다. 친구가 먼저 계산을 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나도 값을 치르면 뒤따라가 친구를 부르려 했는데 앞에 있던 아저씨가 오천 원을 천 원짜리로 바꾸는 등 이래저래 시간을 끌었다. 거리가 벌어지겠다 싶었으나 집에 가는 길은 빤하기에 아까 꽉 막힌 버스에서마냥 속이 타지는 않았다.  


편의점 밖으로 나서 멀찍이 보았는데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간 과자를 주지 못하고 공치겠다 싶어 봉지 네 개를 옆꾸리에 끼고 열심히 뛰었다. 아까는 하도 분통하여 승강장 플랫폼 끝에서 끝까지 막 뛰고는 이 무슨 뻘짓이냐 싶어 또 속이 끓었는데, 이번 뜀박질은 의미가 있다 싶어 신이 났다.


골목을 엇갈릴 뻔하다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주말에도 출근을 했는지 퇴근길이라 했다. 나는 너보고 샀다고 꼬깔콘을 건냈다. 친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주저리주저리 털어놓기에는 가는 길이 짧고 날도 춥기에 그냥 뻔한 안부말을 나누다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와 엄마랑 누나가 보던 티비를 따라 봤다. 누나는 과자 셋을 모두 뜯어 하나하나 돌려 먹으며 요즘에는 꼬깔콘 달콤한 맛이 안보인다고 했다. 어머니는 역시 바나나킥을 집으셨다. 그리고는 너희 어릴 적에 이 과자를 엄청 좋아했다고 하셨다. 입에서 잘 녹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고. 나는 지금은 어머니 드실 때 빼곤 썩 즐겨먹지 않기에 의아했다. 그냥 어머니가 좋아 사오신 과자를 우리가 따라 먹은 건 아닐까 생각해보고 아니면 우리가 자꾸 사달라 했기에 어머니도 좋아하게 되신 건가 생각해봤다.


티비에서 웃으라는대로 따라 웃다가 씻고 방에 들어왔다. 하루 종일 끓던 분통한 마음이 다시 떠오르고 에스컬레이터에서 과자 봉지 뜯듯 터진 웃음도 떠올랐다. 오늘 하루에 미련이 남는 것은 여전하나 조금은 가볍게 마무리 할 수 있는 것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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