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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자헌 May 25. 2019

아버지

오랜만에 아버지랑 아침식사를 했다. 아버지가 김을 구우셔서 나는 밥을 펐다. 밥솥을 열자 흰 찰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새벽에 어머니가 해놓고 가신 모양이다. 갓 지은 밥에 주걱을 대니 찰기가 가득했다. 밥이랑 주걱이 찐득대는 소리에 입맛이 돌았다. 나는 찰밥이라 김이랑 잘 어울리겠네요, 했다. 아버지는 구운 김을 식탁 위로 가져와 가위로 자르셨다. 사각사각 바다내음이 났다.


나는 밥을 김에 싸서 한 번은 그냥 먹고 한 번은 간장에 찍어 먹었다. 아버지는 김치통에서 배추 몇 장을 꺼내 길죽하게 자르셨다. 처음에는 가위로 자르려다 시원치 않으신지 손을 동원해 찢으셨다. 나는 저리 다 찢어 놓으면 나중에 못 먹지 싶어 그냥 가로로 잘라도 돼요, 했다. 아버지는 밥에 김치를 올리며 이리 길죽해야 맛이 좋다 하셨다.


금세 밥그릇이 비었다. 아버지 그릇에 한 주걱 더하고 내 그릇에도 한 주걱 더했다. 아버지는 물끄러미 내 머리를 보시더니 너는 얼굴이 길어서 가운데 가르마가 안 어울린다, 하고 다시 한 숟갈을 드셨다. 나도, 그렇기는 한데 요즘 머리숱이 줄어 저절로 가운데 가르마가 되더라구요, 하고 간장에 김을 찍어 먹었다. 아버지가 네가 무슨 벌써 머리가 빠지냐며 놀라시기에, 에이 제가 이제 서른이에요,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도 서른 즈음에 머리숱 줄기 시작하지 않으셨느냐, 나 갓난아기 적 사진 보면 그러시던데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본인께선 아니라신다. 이마가 넓었던 거지 머리는 오십줄 들어서야 빠지셨다고. 나는 그러시냐고 웃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시기에 나는 커피물을 올렸다. 아버지가 청소기를 돌리시기에 나는 이불을 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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