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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자헌 Nov 18. 2019

가을비

버스에서 내리니 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을 펴고 정류장을 걸어 횡단보도 앞에 섰다. 밤이 깊었고 저마다 쥔 우산 속 사람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떠나온 호텔방의 너른 창이 떠올랐다. 종일 내린 비로 어두운 도시의 불빛들은 차분했다. 빼곡히 찬 높고 낮은 건물들과 거기에 매달린 창문들은 마치 다른 별 다른 행성들처럼 어스름히 빛을 냈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종일 나는 침대에서 너를 끌어안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우울을 토로했었다. 지나버린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우산을 부여잡고 집으로 향하는 골목을 걸어올랐다. 가을비에 떨어진 잎들은 아직 숨이 붙어 있다고, 고개를 쳐들어 쏟아지는 빗방울을 견뎌냈다. 순간을 살아야해. 생각했다. 웅덩이를 피하며 걸으려 노력해도 운동화는 금세 얼룩이 졌다. 나는 순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부여잡으면 다시 지나간 순간을 헤매게 될까 두려웠다. 운동화가 젖어 발끝이 축축했다. 어디서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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