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대학로 중고서점에 갔다.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싶었다. 서점 검색대에서 찾아보니 1990년대에 나온 책, 2000년대 초에 나온 책, 여러 권이 있었다. 제일 위에 뜨는 두 권으로 위치를 출력했다. 출근길에 읽을 참이라 가벼운 책으로 고르고 싶었다.
하나를 찾았다. 기대하던 것보다 크고 두꺼웠다. 표지도 딱딱했는데 오래된 중고서적이라 모서리 부근은 물렁해져 있었다. 딱 동화책이군. 펼쳐보니 글씨도 크고 그림도 큼지막했다. 그런데 문체는 오래된 번역투로 표지만치 딱딱하더라. 동화책이라고 구색만 맞춰놓은 듯해 우스웠다. 스무 살 때 아껴입던 카라티 오랜만에 꺼내 입은 아저씨 같달까.
다른 하나도 찾았다. 이번에는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책이었다. 표지에는 소혹성에 서있는 어린 왕자의 모습이 작은 액자처럼 걸려있었다. 펼쳐보니 글씨도 작고 문체도 훨씬 부드러웠다. 어린 왕자를 찾는 어른들을 위한 책이었다. 그런데 너무 곱상하달까. 좀 더 투박하고 담백한 모습을 상상했었다.
어떤 책으로 사야하지. 첫 장부터 두 개의 책을 번갈아가며 읽어보았다. 딱딱한 책에서 하나의 긴 호흡으로 옮긴 문장이 곱상한 책에서는 여러 개의 짧은 문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또 딱딱한 책에서 평서문으로 옮겨놓은 문장이 곱상한 책에서는 따옴표 안에 들어가 목소리를 냈다.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출근길 꺼내 읽기에는 당연히 곱상한 책이 편할 텐데, 왠지 딱딱한 책의 호흡이 더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제 정말 아저씨라 그런가. 오히려 부드러운 어린 왕자가 너무 동화 같아서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쩐다.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그 친구에게 물어볼까? 너는 누구의 번역서를 읽었느냐고. 아니면 검색을 해볼까? 누구의 번역서가 더 저명한지. 어느 출판사의 책이 가장 잘 팔리는지.
나도 참 구제불능이구나. 정말 구제불능이야. 아프리카 사막 한 가운데 떨어져도 나는 이러고 있겠군. 어린 왕자를 만난들 꺼내 보여줄 보아뱀 그림도 없겠어. 나는 기억 속 어린 왕자 그리기를 그만두고 가방을 뒤적여 지갑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