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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자헌 Nov 01. 2020

은주

  "나, 어젯밤에도 조금 뛰었잖아. 대단하지." 

  은주가 테이블에 앉아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은주와 상훈은 조금 일찌감치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은주가 설렁탕 집을 골랐고 식당은 아직 한산했다.

  "오, 이틀 연속이네."

  상훈이 씩 웃으며 호응을 했다. 상훈은 설렁탕 두 그릇을 주문한 뒤 컵에 물을 따랐다. 

  "응. 그저께 뛰고 나서 어제 다리가 조금 뻐근하긴 했거든. 그래서 뛸까 말까 고민했는데 일단 집 밖으로 나갔지. 달리기 시작하니까 또 다리가 움직여지더라고. 기분 좋았어. 와, 그런데 나 진짜 심각하게 운동 부족이었나 봐. 얼마 안 뛰었는데 지금 온몸이 아려. 달리기만 했는데 왜 어깨까지 뻐근한 거야. 신기하네."

  은주가 오른손을 올려 왼쪽 어깨를 두드렸다. 상훈은 잔뜩 찌푸린 은주의 표정에 웃음이 났다.

  "오늘 밤에도 뛸 거야? 저녁에 비 온다던데."

  "그럼 땡큐지. 오늘은 쉬어도 되겠다. 이틀 연속이면 많이 한 거야."

  상훈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은주는 자신의 대사가 꽤나 그럴듯했다는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은주가 오른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이어서 말했다. 은주는 스스로 조금 복잡하다 싶은 이야기를 할 때면 꼭 그렇게 턱을 쓰다듬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천장을 흐릿하게 응시하며 말이다.

  "내가 어제는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면 말이지. 무엇이든 적당히 해야 한다는 거야. 내가 어제 한 번 더 뛸 수 있었던 건 그저께 적당히 뛰었기 때문이거든. 사람 마음이 웃긴 게, 안 하던 짓을 할 때는 꼭 끝장을 보려고 하거든. 학기 내내 놀다가 시험기간에 갑자기 공부하려고 마음먹잖아? 그러면 첫날은 비장하게 막 엄청 열심히 해. 밤새서 해. 그런데 그러다 금방 질려버린다. 다음 날 되면 책상에 앉기도 싫어. 그리고 생각하지. 역시 나는 공부할 체질은 아닌 거 같아. 무슨 말인지 알지?"

  상훈은 테이블 위 단지에서 깍두기를 꺼내 접시에 옮겨 담으며 되물었다.

  "그래서?"

  "나도 원래 운동이랑은 담을 쌓고 살던 사람이잖니? 그래서 운동 좀 해야지, 해야지 말만 하고 살다가 딱 마음먹고 달리러 나갔을 때 엄청 비장했던 거야. 나, 달리기 어플도 깔았거든. 매일매일 달리고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말이야. 공부할 때 스터디 플래너부터 사는 것 있지? 그런 거야. 그렇게 달리는데 엄청 좋더라. 말로만 하던 운동을 진짜 하고 있으니까 스스로가 너무 대견한 거야. 밤새서도 달리겠다 싶더라니까. 그런데 조금 뛰다가, 내가 말했지? 한 20분 뛰고 핸드폰 배터리 나가서 그냥 들어왔다고."

  상훈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키득거렸고 은주도 스스로 어처구니없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비웃지 마! 어쩌겠어. 들어가야지. 그냥 달리면 어플에 기록이 안 남잖아."

  "맞아, 맞아. 핸드폰 꺼지면 집으로 가야지."

  은주가 장난스레 핀잔을 주었고 상훈은 성심껏 맞장구를 쳤다. 은주가 입을 삐죽이고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서 집으로 와서 씻고 바로 잤거든? 와, 그런데 내가 어지간히 몸이 굳어 있기는 했던 거야. 다음 날 일어나니까 종아리가 땅기더라고. 20분 뛰었다고 말이야. 그래서 생각했지. 나한테는 20분이 적당 수준이었구나. 욕심내서 더 뛰었으면 골병 날 뻔했구나. 골병 났으면 또 그 핑계로 한참 운동 안 했을 거 아니니? 내가 그저께 10분만 더 뛰었어도 분명 어제 한 번 더 뛰지는 못했을 거야. 이제 알겠어. 큰 맘먹고 안 하던 짓을 하더라도 오히려 비장한 마음으로 하면 안 되는 것 같아. 딱! 할 수 있을 만큼만 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 같아. 그러다 보면 다음에는 30분 정도 뛸 만한 몸상태가 되겠지."

  은주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설렁탕이 나왔다. 상훈이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은주에게 건넸다. 

  "그래요. 맛있게 드세요. 이틀이나 연속으로 달리셔서 온몸이 땅기실 텐데, 설렁탕이 당길만하셨네."

  은주는 설렁탕을 한 숟갈을 떠서 먹었고 상훈은 국물에 소금을 친 뒤 밥을 말았다. 은주는 뜨거웠는지 숟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휴, 왜 이렇게 뜨겁니? 혀 데겠다. 좀 식으면 먹어야지."

  "그럼 설렁탕이 뜨겁지 안 뜨겁냐. 후후 불면서 천천히 먹어. 아니면 조금 덜어서 식혀 먹던지."

  상훈이 크게 한 숟갈을 떠 입으로 넣었다. 상훈이 허어, 숨을 내쉬자 입에서도 뜨거운 기운이 세어 나왔다. 은주는 상훈이 헉헉대며 먹는 모습이 우스워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그의 말대로 설렁탕에 든 고기 몇 점을 건져 공깃밥 뚜껑에 옮겨 담았다. 은주가 상훈을 보며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운동이 힘들지 안 힘들겠어? 몸이 따라주는 만큼 하면서 늘려나가는 거지. 일할 때도 그래. 능력 이상으로 잘해보겠다고 용쓰면 금방 지쳐. 오래 못 버텨. 나는 주로 내가 얼마만큼 해내야 하는지나 얼마만큼 해내고 싶은지만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는 잘 몰랐던 것 같아.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고 말이야. 그냥 해야 된다, 해야 된다 하면서 달리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 입천장 다 데고 골병 나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너 진짜 맛있게 먹는다."

  상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깍두기 한 조각을 잽싸게 입으로 넣었다. 와삭와삭 씹는 소리가 경쾌했다. 상훈이 다시 한 숟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렇지? 그러니까 얼른 드세요. 너 그러다 먹을 타이밍 놓친다."

  은주도 웃으며 다시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속이 뜨끈해져 더운 숨이 절로 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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