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계셨고 나는 화장실 불을 끄고 부엌으로 갔다.
어머니가 돌아서서 싱크대에 기댔다. 나는 식탁에 앉아 귤 하나를 깠다.
"어제 엄마가 송이 이모네 다녀왔잖니? 이모가 차나 한 잔 하러 오라고 해서 갔었지."
내가 귤을 한 입에 넣고 고개를 끄덕이니 어머니가 싱크대에서 잔받침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건조대에 있던 찻잔을 들어 그 잔받침 위에 올렸다. 청색 자기로 된 찻잔이었다.
"이 찻잔은 어제 이모네 집에서 가져온 거야. 이모가 찻장 정리하다가 자기는 안쓸 것 같아서 빼놨다고, 엄마 쓰려면 가져가라고 해서."
"그러게요. 송이 이모네 스타일이긴 하네요."
나는 다음 귤을 깠다. 어머니가 이어 이야기했다.
"응. 일단 좋다고 하고 받아왔지. 그런데 막상 가져오고 나니까 엄마도 별로 안쓸 것 같은 거야. 잔도 두꺼워서 무겁고 하니까는. 그래서 고민하다가 잔받침은 화분 물받침으로라도 써야겠다 싶어서, 베란다에 있는 다육이 화분 작은 걸 올려뒀어요."
"그런데요?"
나는 화분만 생각하는 어머니 모습이 우스웠다.
"그런데 오늘 엄마가 장 보러 나간 김에 이것저것 구경하는데, 어머, 이 찻잔이랑 똑같이 생긴 걸 파는 거야. 그래서 가격을 봤더니..."
"얼마였어요?"
"칠팔 만원 하는 거 있지? 그래서 이렇게 씻어서 다시 합치는 거야. 씻으면서 보니까 또 잔이 오리 모양으로 이쁘더라고. 웃기지?"
어머니는 잔과 받침을 들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나도 '웃기네요' 하며 낄낄 댔다.
"듣고 보니 화분 받침으로만 쓰기에는 아깝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당장 안 쓰더라도 일단 씻어두었지."
어머니는 잔과 받침을 다시 건조대에 올려놓은 뒤 싱크대에 남은 그릇들을 흐르는 물에 씻었다. 나는 세 번째 귤을 깠다. 어머니가 이어 말했다.
"엄마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사람은 공짜로 얻은 건 그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구나. 아무리 귀한 것이어도 본인이 공들여서 얻은 게 아니면 귀한 줄을 모르는구나. 그렇지?"
나는 귤을 오물오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별거 아니어도 제가 고생해서 얻은 것에 더 마음이 가요."
어머니는 설거지를 마치고 고무장갑을 벗어 싱크대에 걸어두었다.
"배 안 고파? 김치찌개랑 밥 먹을래? 엄마가 돼지고기 넣고 김치찌개 맛있게 해 놨는데."
"아니에요. 저 친구랑 저녁 먹고 왔어요."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살짝 인상을 쓰며 손을 저었다.
"그럼 계란 후라이 하나 해줄까? 동충하초 먹인 닭이 낳았다고 좋은 계란이래."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며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계란 후라이."
어머니는 기분 좋게 계란 하나를 골라 손에 쥐고 냉장고 문을 닫은 뒤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