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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자헌 Feb 13. 2022

혜정

"아들, 엄마가 재밌는 이야기 해줄까?"

어머니가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계셨고 나는 화장실 불을 끄고 부엌으로 갔다. 

"뭔데요?"

어머니가 돌아서서 싱크대에 기댔다. 나는 식탁에 앉아 귤 하나를 깠다. 

"어제 엄마가 송이 이모네 다녀왔잖니? 이모가 차나 한 잔 하러 오라고 해서 갔었지."

내가 귤을 한 입에 넣고 고개를 끄덕이니 어머니가 싱크대에서 잔받침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건조대에 있던 찻잔을 들어 그 잔받침 위에 올렸다. 청색 자기로 된 찻잔이었다.

"이 찻잔은 어제 이모네 집에서 가져온 거야. 이모가 찻장 정리하다가 자기는 안쓸 것 같아서 빼놨다고, 엄마 쓰려면 가져가라고 해서."

"그러게요. 송이 이모네 스타일이긴 하네요."

나는 다음 귤을 깠다. 어머니가 이어 이야기했다.

"응. 일단 좋다고 하고 받아왔지. 그런데 막상 가져오고 나니까 엄마도 별로 안쓸 것 같은 거야. 잔도 두꺼워서 무겁고 하니까는. 그래서 고민하다가 잔받침은 화분 물받침으로라도 써야겠다 싶어서, 베란다에 있는 다육이 화분 작은 걸 올려뒀어요."

"그런데요?"

나는 화분만 생각하는 어머니 모습이 우스웠다.

"그런데 오늘 엄마가 장 보러 나간 김에 이것저것 구경하는데, 어머, 이 찻잔이랑 똑같이 생긴 걸 파는 거야. 그래서 가격을 봤더니..."

"얼마였어요?"

나는 궁금해 추임새를 넣었다.

"칠팔 만원 하는 거 있지? 그래서 이렇게 씻어서 다시 합치는 거야. 씻으면서 보니까 또 잔이 오리 모양으로 이쁘더라고. 웃기지?"

어머니는 잔과 받침을 들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나도 '웃기네요' 하며 낄낄 댔다.

"듣고 보니 화분 받침으로만 쓰기에는 아깝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당장 안 쓰더라도 일단 씻어두었지."

어머니는 잔과 받침을 다시 건조대에 올려놓은 뒤 싱크대에 남은 그릇들을 흐르는 물에 씻었다. 나는 세 번째 귤을 깠다. 어머니가 이어 말했다.

"엄마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사람은 공짜로 얻은 건 그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구나. 아무리 귀한 것이어도 본인이 공들여서 얻은 게 아니면 귀한 줄을 모르는구나. 그렇지?"

나는 귤을 오물오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별거 아니어도 제가 고생해서 얻은 것에 더 마음이 가요."

어머니는 설거지를 마치고 고무장갑을 벗어 싱크대에 걸어두었다.

"배 안 고파? 김치찌개랑 밥 먹을래? 엄마가 돼지고기 넣고 김치찌개 맛있게 해 놨는데."

"아니에요. 저 친구랑 저녁 먹고 왔어요."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살짝 인상을 쓰며 손을 저었다.

"그럼 계란 후라이 하나 해줄까? 동충하초 먹인 닭이 낳았다고 좋은 계란이래."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며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계란 후라이."

어머니는 기분 좋게 계란 하나를 골라 손에 쥐고 냉장고 문을 닫은 뒤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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