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벨 연구소와 노벨상(3)

물질, 숫자, 욕구

by 고원규

1. 광학집계


SF(Science Fiction) 영화에서 광선을 발사하여 물체를 끌어 당기는 견인 광선(Tractor Beam)이 등장하곤 한다.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 오래된 영화 뿐 아니라 최근 개봉한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서도 닥터 스트레인지를 납치하는데 사용되었던 이 기술은 사실 과학자들에게도 오랫동안 관심을 받았던 분야이다.


05 트랙터빔.jpg 그림 1.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견인광선


레이저가 발명된 1960년대 벨 연구소의 아서 애슈킨은 레이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물체가 레이저 광선에 의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애슈킨과 함께 일하던 스티븐 추는 이를 듣고 레이저를 이용하여 원자를 가두는 기술을 발전시키며 이를 레이저 냉각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다. 물체를 움직이는 것과 냉각 기술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평상시에 자주 사용하는 '온도'의 개념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온도는 뜨겁고 차가운 정도라 정의하지만 원자/분자 수준의 미시세계에서 생각해보면 온도는 분자의 운동에너지로 나타낼 수 있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점차 온도가 높아져 수증기가 되는 과정은, 얼음을 구성하는 물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점차 커지면서 얼음 결정이 고체에서 액체로 변하고 다시 물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충분히 커지게 되면 물의 증기압력이 공기/대기압력 이상이 되며 끓기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원자/분자가 냉각이 된다는 것은 운동에너지가 감소하여 점차 정지 상태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스티븐 추는 레이저를 원자에 쏘면 원자의 운동에너지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원리를 이용하여, 6개의 레이저를 이용하여 X, Y, Z축의 양쪽에서 원자를 가두는 기술을 1986년 Physical Review Letters에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이 때 스티븐 추와 함께 애슈킨의 이름도 등장하며 실제로 둘은 다른 논문에서도 함께 저자로 등장하나, 1997년 노벨상은 스티븐 추만 받게 된다.


이후 애슈킨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원자보다 훨씬 크지만 여전히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세포나 미세 입자들에 레이저를 쏘게 되면 레이저의 세기가 더 큰 가운데 방향으로 이들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는 단순히 원자의 운동에너지를 레이저 에너지로 상쇄시키는 것과는 다르며, 특히 레이저 세기가 너무 커서 물체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레이저를 일정한 주기에 따라 짧은 시간만 방출되는 펄스 레이저를 적용하여 세포 등의 생물 분야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애슈킨은 2018년 노벨상을 수상하였으며, 이 때 나이가 96세로 역대 노벨상 중 최고령 수상자이다. 2년 뒤인 2020년 애슈킨은 9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 초고해상도 형광현미경


2014년 초고해상도 형광현미경 개발의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에릭 베치그는 코넬대학에서 분해능 한계를 뛰어넘는 고해상도 광학 현미경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연구자이다. 현미경의 분해능은 물체가 너무 작으면 일반 가시광선을 사용하는 광학 현미경으로는 정확한 영상을 얻을 수 없다는 한계를 나타낸다. 가시광선의 파장이 400-700나노미터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아주 작은 두 물체가 이러한 파장(예, 200나노미터 이하)보다 더 짧은 거리에 존재하면 물체에서 나오는 빛들이 서로 겹쳐 보여 분간할 수 없게 된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졸업 후 베치그는 벨 연구소에서 근접장 (Near Field) 현미경의 개발에 참여하였으며, 이는 레이저를 사용하여 시료에 손상이 많아 생물 등 분야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애슈킨과 달리 베치그는 본인의 연구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1994년 회사를 그만두었으나,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1995년 논문을 발표하고 민간 산업계에서 수 년간 일하면서 뚜렷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2004년 벨 연구소에서 함께 일했던 헤스와 다시 현미경 연구를 시작하여 헤스의 집에서 실제로 현미경을 제작하게 되고, 2006년 하워드 휴즈 연구소에 취직하여 살아있는 세포를 높은 해상도와 함께 매우 빠른 속도로 촬영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위에서 언급한 대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06 베치그.jpg 그림 2. 2014년 노벨수상자 베치그


아직까지 기초 과학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한국에서는 특히 이들에 대한 환상이 적지 않은 편이다.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한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기고 후대 연구자들에게 크게 기여하는 것을 기리기 위함이지만, 수상자가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의 수재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일정 수준의 연구를 위한 노력과 재능이 필요하겠지만, 특히 위에서 언급한 수상자들의 경우 외부에서 볼 때 결코 순탄한 경로를 거쳐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외부 환경의 다양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꾸준히 노력하여 그 결과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업적이 긴 시간 후 인정받은 경우라 하겠으며, 논문 실적이나 언론에 보도되는 가시적인 성과에 다소 치우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진정한 연구자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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