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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어로빈 Feb 17. 2022

후회하기 위해 퇴사합니다.

나는 다르게 후회하기로 결심했다.


안녕하세요. (주)OO 인사지원팀 OOO 책임입니다.
OO년 O월 O일에 진행한 신입인턴 최종 면접 결과 합격을 안내드립니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는 3개월간의 인턴 기간을 거쳐 정규직을 뽑았다. 인턴기간이 종료되고, 최종 합격 이메일을 받았을 때의 안도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첫 사회생활, 나는 운 좋게 꽤 괜찮은 기업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될 기회를 얻었다. 첫 출근날에는 설렘에 부풀어서 전날 잠을 설치기도 했었다. 팀원분들과 같이 점심 식사를 하며 두근거렸고, 공부만 하던 학생을 벗어나 처음으로 '어엿한 직장인'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을 한다는 것에 괜히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분 좋은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사실 너무나도 짧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왕복 4시간의 출퇴근 지옥을 겪은 후 집에 돌아오면 밤 9시 반이었다. 이렇다 보니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씻으면 어느새 잘 시간이었다.

  나는 어느샌가 내가 평일에는 퇴근시간만을, 퇴근시간이 지나면 주말만을 기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만의 자유시간을 원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소중한 내 시간을 팔아 돈을 벌고 있었기에, 나의 자유가 보장되는 주말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괴롭혔던 가장 슬픈 사실은, 이제 은퇴할 때까지 이 반복되는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혔던 가장 슬픈 사실은, 이제 은퇴할 때까지 이 반복되는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막막했다. 그동안 학생 때는 이런 '막힌다' 라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기말고사가 있었고, 입학이 있으면 졸업이 있었다. 그런데 직장생활의 졸업은 너무나도 까마득하고 멀었다. 아마 직장생활도 '수험생활처럼 3년 동안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된다' 라는 개념이 통했다면, 매일매일 직장에 가는 게 조금은 덜 괴로웠을 수도 있다. 사실 직장은 꽤나 다닐만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나 선배들 중에는 좋은 사람도 많았고, 일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입사 초반에는 주말 동안 실컷 친구들을 만나고 돈을 쓰는 재미로 살았다. 사회 초년생이 벌어야 얼마 벌겠냐마는, "Flex"를 외쳐대는 래퍼 염따처럼 이것저것 사들이며 소비하는 재미로 평일의 괴로움을 잊었다.


내가 아끼는 조던 유니버시티 블루, 이 외에도 여러 신발들을 Flex를 외치며 질렀지만 그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둔 물건의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나는 다시 돈의 노예가 되어 내 시간을 가져다 바치는 삶을 지속해야 했다. 또한 장시간 모니터를 보며 근무하다 보니 살이 찌고 라운드 숄더가 생기는 등 건강에도 문제가 왔다. 어느새 나는 입사 6개월 만에 체중이 10kg나 불어 있었다.




  이러다 보니 끝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다. 입사할 때 주변에서 해줬던 축하의 말들이 떠올랐다.

"요즘 같은 힘든 시기에 취업하게 된 것 정말 축하한다" 라거나,

"이야, 우리 OO이 이제 꽃길만 걸으면 되겠네! 첫 월급 받으면 맛있는 것 좀 쏘냐?"

같은 말들. 그런데 정말 입사라는 게 축하받을 일인가? 이제 평생 쳇바퀴 같은 직장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렇게 내 시간을 갖다 바쳐 직장에 열심히 다니면 나에게 어떤 게 돌아올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20년 넘게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참아가며 월급의 30% 이상을 저축한다 해도, 아파트 한 채 사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차 한 대 마음대로 사서 끌고 다니는 것도 버거워 보였고 결혼이나 육아는 꿈도 꾸지 못할 것 같았다. 내 모든 시간을 다 일하는데 쏟는데도 계속 돈의 노예로 살아야만 하는 현실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았다.


이게 집값이 아닌 연봉 그래프였다면 진짜 직장에 절하고 다녔을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분명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그제야 서서히 깨달았다.

 사회에서 알려준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고, 남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기업에 들어오면 모든 게 끝나고 해피엔딩일 줄 알았다. 그 뒤에 기다리고 있을 사회인으로서의 생활이 꽤나 괜찮을 줄 알았다.


  내가 직장생활을 계속했을 때의 미래는 내 바로 옆 차장님과 팀장님의 모습으로 간접적으로 짐작이 가능했다. 직장에서 수십 년을 근무해도 '스티브 잡스처럼 사람들의 생활을 더 좋게 바꾸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어' 라는 어렸을 적 가졌던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은 1%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10년 뒤에 직장이 먼저 망하거나, 내가 잘릴 수도 있으니 수십 년을 근무할 수 있을 거라는 가정도 틀렸다.


  꿈을 포기하고 돈의 노예가 된다면 적어도 부자라도 되어야 만족하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직장 생활로는 많은 돈을 벌 수 없을 뿐더러, 행여나 많이 번다 해도 인생의 대부분을 시간을 팔아 돈을 산다면 과연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 월에 이천만 원을 버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루 12시간을 넘게 근무하느라 딸아이와 주말에 놀아줄 시간조차 없다면, 가족과의 제주도 여행을 떠날 시간도 내기 어렵다면, 그걸 진정한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엠제이 드마코가 쓴 '부의 추월차선' 에서는 부의 정의를 다음 3가지(3F)로 내린다.

가족 (Family), 건강(Fitness), 자유(Freedom).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족이나 친구들과 행복을 나눌 수가 없다면, 혹은 건강하지 못해서 그 돈을 쓰지를 못한다면, 혹은 감옥에 갇히거나 일에 얽매여 자유를 얻지 못한다면 결국 행복할 수가 없다고 한다.


가족 (Family)

  과거 첫 월급을 받은 직장인들이 부모님에게 내복을 선물해드린다거나,  친구들을 근사한 고깃집을 데리고 가 한턱내곤 했던 이유는, 부는 주변 사람들과 나눌 때 그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평생 직장생활만을 지속해서는, 내복을 선물해드리기는 커녕 오히려 부모님에게 뭐 물려줄 것 없으시냐며 손을 내밀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일 처지였다.


부는 다양한 형태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건 부모님을 위한 내복이 될 수도, 딸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건강(Fitness)

  시한부 인생을 살거나 암을 이겨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돈을 주더라도 그들의 건강을  수가 다는 걸 알기에, 건강이 지닌 가치를 누구보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직장인들은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서 모니터를 보며 근무하느라 거북목, 라운드숄더 등의 고질병을 앓는  현실이다. 잦은 회식으로 원치 않는 술까지 마셔야 하고 스트레스로 화병까지 생기는데 도저히 직장생활을 한다고 건강에 도움이   같지는 않았다.


자유(Freedom)

  나는 앞서 말한 두 가지보다도 이 자유가 가장 절실했다. '부의 추월차선'에서는 자유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상사와 알람시계, 돈 때문에 받는 압박으로부터의 자유다. 그리고 하기 싫은 고된 일로부터의 자유이며,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행동을 하며 인생을 살아갈 자유다. 물론 이 또한 현재 직장 생활을 계속해서는 절대 얻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누구나 '열심히'만 한다고 성공할 수 없다는 건 이미 다 안다. 그건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이라는 시작점부터 부산이라는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고 비유하자. '열심히' 걸어간다면 그게 현명한 판단일까?

  누구나 다 자가용이나 택시, 버스나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걸 어렵지 않게 떠올린다. 누구나 다 열심히 걸어가는 사람이 비효율적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나는 신기하게도 직장인으로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었었다. 비싼 커피를 아껴가며 월급을 꼬박꼬박 저축하고, 연 8% 주식시장의 수익률에 기대 복리의 마술을 믿으면 먼 미래에 내가 부자가 되어 있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백발노인인 상태로 부자가 되는 것은 너무 늦다. 누구도 부산까지 한 달 넘게 걸어서 도착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분명 걷는 것보다 처음엔 힘들 거다. 걷는 건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지만, 비행기를 타는 건 온라인 사이트를 알아보고, 표를 예매하고 공항까지 가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걷는 건 매일 해서 친숙하겠지만, 어쩌면 처음 비행기를 타는 건 매우 낯설고 두려울 수도 있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못 받는다는 사실과 경력단절 등 이런저런 두려움을 뒤로하고, 나는 47일 뒤 퇴사 결심을 확정 지었다. 내가 원하는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시간을 남에게 돈을 벌어주는 시스템에 할애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시스템에 쓰기 위해. 종종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대부분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지금 비행기를 타는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나는 쉽게 부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첫 사업은 분명 실패할것이고 한동안 그 실패를 후회할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직장인으로서 안주하며 산다면, 나는 노년을 평생 후회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퇴사한다. 해보지 않은 일이 아니라 내가 도전했던 일을 후회하기 위해

 

나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느니 실패를 후회하는 삶을 살겠다.
-엠제이 드마코(MJ Dema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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