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사이
오늘 오후 2시쯤이었을까, 한창 바쁜 와중에 사내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요즘 내 사내 메신저를 장식하는 '오피스 애인'은 미국 쪽 현지인 담당자, 그리고 그와 연계된 한국 지사의 담당자 두 명이다. 당연히 또 그쪽일이겠거니 하고 메신저 앱을 켰는데 메시지의 주인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 주인공은 같은 본부지만 타 팀에 속해있는 과장님이었다. 100명 정도 규모의 본부에 팀도, 직급도 다르다 보니 업무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거의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올해 상반기에 고객사 한 건의 이슈에 대해 번역 작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짧은 대화를 나눈 게 전부다.
음? 이 분이 나한테 연락을 할 일이 없을 텐데, 혹시 몇 달 전에 진행했던 그 고객사에 또 이슈가 터졌나 궁금해하면서 메시지를 확인했더니 내용은 더 예상 밖이었다.
"안녕하세요 OO 씨, 잘 지내고 계시죠? 다름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전할 소식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로 시작되는 내용의 모바일 청첩장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직접 청첩장을 전달하지 못하고 대신 모바일 청첩장 링크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예식은 가까운 직계가족 및 지인들끼리 조촐하게 치를 예정이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링크를 타고 들어가 청첩장을 다 본 뒤의 내 감정은 결혼을 순수하게 축하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왜 이걸 나한테 보내지?"
짧은 순간이지만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쾌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드는 나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했다. 물론 청첩장 링크 속에 필요 이상으로 크게 적혀있는 계좌번호와, 그들의 식은 직계 가족 및 친한 지인들만 참석해 진행할 것이라는 문구 속에 이미 나는 '별로 안 친한 지인'이란 뜻이 함축되어 있어서였을 수도 있다. 물론, 나에게 청첩장을 보낸 이 과장도 나름의 고심 끝에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통화도 아닌 그냥 이름만 바꿨을 뿐인 전체 복사 메시지로 나에게 달랑 메신저를 통해서만 보내는 데에서 느끼는 서운함도 약간은 있었다.
다만, 내가 불쾌했던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이 사람의 결혼 소식을 있는 그대로 축복해주는 게 아니라 나와 이 사람의 관계, 나의 대처 및 그로 인한 직장 내 불이익 유무 등을 판단하고 있는 나에게 놀랐기 때문이다.
"우와! 결혼한다고요? 그럼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거네요? 나도 얼른 커서 결혼하고 싶다!"
라고 웃으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이야기하던 시절도 있었다. 반면 지금의 나는, 이 사람을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 축하하는 마음보다는 내 카카오뱅크에 잔액이 얼마가 남았는지를 먼저 걱정하는 계산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겠지만, 나의 '청첩장'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그 사람이 나중에 결혼할 때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가?
나는 잘 연락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을 정도의 위인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같은 회사, 같은 팀이라 해도 그 사람과 인간적인 교류가 없다면, 정말 '회사'라는 인연으로만 묶인 비즈니스 관계라면 청첩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으로, 난 그 사람이 청첩장을 준다 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줄 자신이 없거든.
2. 그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다고 믿는가?
물론, 어떤 지인이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지 아닐지는 알기 어렵다. 내가 정말 각별하게 생각했던 관계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나는 그냥 수많은 인간관계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난 내가 나중에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 사람도 반대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직업 특성상 다양한 인맥과 거래처를 상대했던 부모님 손에 이끌려 수많은 결혼식장에 끌려갔던 기억이 난다. 철없던 나에게 결혼식장 = 좀 멀긴 하지만 맛있는 뷔페를 먹는 곳이란 하나의 등식일 뿐이었다.
사실 슬프지만 작년까지도 나는 부모님의 지인, 그러니까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결혼식장에 단지 뷔페를 먹으러 갔었다. 신랑과 신부의 얼굴과 이름조차도 알지 못한 채 신나서 연어회를 접시에 한가득 담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맙소사!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혼을 하던 신랑 신부는 그때 내 관심사가 그들의 축복이 아니라 뷔페 연어회가 언제 리필되는지에 쏠려있었다는 걸 알까?
물론 누구는 이게 철없는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마지막 결혼식 참석 이후에 부모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이런 식의 결혼식 참석은 상대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그리고 나 자신이 양심의 가책을 너무 많이 느낀다고. 나는 나중에 내 결혼식에 그런 사람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우리도 뭐 다 진심으로 축복하는 마음에서 가는 건 아니야. 다 축의금 낸 김에 밥이라도 먹고 오려고 가는 거지. 그렇게 낸 만큼 나중에 돌려받는 거야, 결혼이나 장례식처럼 경조사 있을 때 많이 베풀면 다 돌아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실제로 자기는 냈지만 상대방은 돌려주지 않아 인간관계 연을 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하도 많이 듣기도 했고, 무엇보다 신랑 신부의 연을 '축하하는 모임'이 아닌 '언제가 내 수금일이 될지 모르는 대규모 계모임'처럼 다가오는 현실이 씁쓸하다.
내가 철이 없고 세상 물정 모른다고, 냉정하다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축하해 줄 자신 있는 사람에게 쏟을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난 사람을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는 내가 축의금을 내면 나도 결혼할 때 언젠가 돌려받겠지라는 기대를 할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받으면 본전이겠지만 받지 못한다면 그 실망감과 허탈함이 배가 되어 돌아올 것을 안다. 누군가는 일단 내고, 못 받으면 적은 비용으로 인간관계를 걸러낼 수 있으니 이득이지 않냐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축의금의 액수는 '없어져도 좋을 적은 돈'에 속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수십억 대 자산가였으면 이런 긴 고민?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바로 계좌로 쿨하게 입금하고 못 받아도 그만이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용기를 냈다. 청첩장에 있는 계좌에 돈을 부치지 않기로. 이미 여기까지 생각이 든 이상, 그 계좌로 축의금을 보내는 것은 나를 속이는 행위이자 그 사람을 속이는 행위이기도 했다. 대신 메신저로 좋은 소식 고맙다고, 축하한다고 짤막한 인사를 전하는 걸로 대신했다. 추후 내가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 나는 내 행동이 나를 위한 행동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