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변한다.
올해 중3인 우리 딸은 개 싸가지이다. 지가 엄청나게 시크한 줄 안다. 우리 집에서 딸은 주인집 아씨이고 나는 시종이다. 특목고 입시를 3주가량 앞두고 있어서인지 그 유세가 더 하늘을 찌른다. 난 비굴하게 눈치를 보다가 '내가 왜?' 하는 욱하는 마음이 들어 몇 번 소리도 질러보지만 돌아오는 건 한심하다는 썩소뿐. 개짜증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딸은 고고하게 스타벅스에서 화학 숙제를 하고 계신다. 나를 시종처럼 옆에 앉혀놓고 말이다.
"뭐라고 쓴 거야?"
앗, 들켰다. 딸이 내가 쓴 글을 읽고 있었다.
"하하하하하하"
그냥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내 앞에선 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위의 글을 다 읽더니 딸이 시크하게 말한다. 그래도 별말 없는 걸 보니, 지도 찔리는 게 있긴 있는가 보다.
딸이 어렸을 때 나는 딸의 하느님이었다. 유독 나만 좋아한 딸 때문에 지친 적도 곤란한 적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이렇게나 사랑해 줄까, 하는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딸은 내가 잠시라도 안 보이면 미친 듯이 찾았고, 잘 때조차 내가 어디 갈까 봐 내 배 위에서 잤다. 그렇게나 나를 사랑해주던 딸은, 하지만,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나를 완전히 배제한 자기 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아주 시크하게 내 스킨십을 피하고 내 관심을 묵살하면서 말이다.
나도 잘 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옛 영화 대사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뽀뽀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딸은 이제 떠났다. 대신 하루 종일 힙합 음악을 듣고 웹툰을 보며 낄낄대다가도 나랑 눈이 마주치면 급정색을 하는 아주 시크하고 싶어 몸살난 녀석이 내 옆에 있다. 이런 변화가 너무 급작스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끔 사춘기 딸의 얼굴에서 아기 때 얼굴이 언뜻언뜻 비치면 나는 그리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