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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Dec 23. 2020

찜통 통근 버스

난 통근 버스를 타고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출퇴근한다. 그러다 보니 버스 내 쾌적함에 꽤 민감한 편이다. 다른 무엇 보나 버스의 적정 온도는 쾌적한 출퇴근을 위한 필수요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이 추운 겨울, 버스 내 적정 온도를 기대하기는 정말 어렵다. 출발할 때에는 냉동상태이던 버스가 한 시간 반 가량의 운행을 마치고 내릴 때가 되면 거의 찜통 수준으로 데워진다. 매일 찜통에서 푹 쪄진 옥수수가 된 기분으로  버스에서 내리면서 버스의 난방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통근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는 어느 추운 날, 조용히 잠을 청하고 있었다.

"기사님, 히터 좀 켜 주세요!"

건너 자리 한 남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 기사님은 그 남성의 요청에 따라 난방을 최대치로 높였는지 버스 안은 다른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데워지고 있었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 가만히 있어도 버스 안은 찜통이 될 터인데 뭐하러 그 순간을 재촉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게다가 히터를 켜달라고 한 남성을 슬쩍 보니 겉옷은 옆자리에 벗어두고 얆은 난방만 입은 채였다.


오늘 퇴근길은 망했다는 심정으로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시 후,

"기사님, 히터 좀 켜 주세요!"

아까와 동일인물이 또 기사님께 소리쳤다.

"아니 지금 히터 잘 나오고 있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 짜증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남성은 짜증스러운 내 기세에 좀 당황했는지 그냥 조용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런데 잠시 후 버스 안이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기사님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난방을 꺼버린 것이다. 히터를 켜 달라는 남성의 두 번째 요청을 히터를 꺼달라는 것으로 잘 못 들으셨던지, 아니면 연이은 요청에 기사님도 짜증이 나신 게 분명했다. 버스 안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자 나는 코트 깃을 여매며 설마 이렇게 난방을 끈 채로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가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다. 아까 그 남성이라도 다시 한번 히터를 켜 달라고 요청하겠지라며 은근히 기다렸지만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그 '히터  남'을 슬쩍 봤다. 그는 이미 겉옷을 입은 채로 앉아 있었다. 아, 버스의 난방은 너무 극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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