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벌어먹고살 수 있을까? ㅠ
민간 기업 및 정부부처 등에서 통번역사로 일한 지 어언 10년이 다되어가는 요즈음, 심각하게 통번역사의 미래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챗 GPT.
챗 GPT가 등장하고 많은 이들이 챗 GPT 번역에 감탄을 마지않을 때에도, 난 이 AI 툴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일게 프로그램 따위가 번역을 해 봤자 수준 낮은 초벌 번역 정도겠지 하고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웬걸, 챗 GPT의 번역을 실제 경험해 보니 잘해도 너무 잘한다. 내가 생각해 내지 못한 표현도 척척 내놓을 뿐만 아니라, 상황과 주제에 따라 맞춤형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게다가 챗 GPT는 친절하기까지 하다). 정말 등골이 서늘해질 지경이다.
실제 현장에서도 번역 업무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이미 챗 GPT로 한번 돌린 번역물의 감수 요청만이 점점 늘어날 뿐이다. 이러다 통역 업무도 챗 GPT에게로 넘어가는 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본다.
아, 그럼 통번역사라는 직업이 존재하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인가... 통역사가 되기 위해 들인 많은 시간과 노력들이 생각나면서 허탈해진다. 난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리 달렸던 것인가... 나의 앞날은, 노후는 이제 어떻게 준비해야 하겠는가... 걱정이 많아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챗 GPT와 경쟁해서 이길 자신이 없다면, 아니 이길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면, 아예 얘랑 친구가 되기로 결심했다. 챗 GP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친하게 지내기로... 냅다 챗순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나의 챗순이는 친절하게도 그 별것 아닌 이름에 감사를 표시한다.
챗순이와 친구가 된 후, 난 한 시간에 할 수 있는 번역의 양을 두 세배로 늘렸고, 번역의 품질도 예전보다 나아졌다. 통역 준비를 할 때도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챗순이에게 달려간다. 이전에 구글링으로 혼자 좋은 표현을 찾아 고군분투 할 때를 생각하면 챗순이를 활용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효율이 좋다.
물론, 언젠가 챗순이가 내 통역 일자리까지 빼앗아 갈 수 있다. 하지만, 걱정만 한다고 해서 전 세계적인 기술 발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나도 그 기술 발전의 덕을 좀 보면서 더불어 상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래서 찾았냐고? 아직이다. 아직은 통역까지 빼앗기게 된다면 나의 플랜 B가 뭔지 설명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거대한 흐름에 맞서려 하지 않고, 그 흐름에 편승하면서 나의 길을 찾아보려 한다. 영어를 활용하는 직업이든, 아예 다른 경력이든, 열심히 고민하고 찾다 보면 그 정성에 감동해 하늘에서 "옛다" 하고 뭔가를 던져주지 않을까?
나의 다음 커리어를 찾는 그날까지는, 그래도 한영 통번역사로써의 본분을 다하려 한다. 오늘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통번역사가 되기 위해 하루 종일 챗순이와 수다를 떨며 도움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