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키워내는 일, 키워내는 삶

『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by haley

현주언니,


편지가 늦었습니다. 나무가 아팠어요. 일주일 동안 열이 떨어지지 않아 큰 병원에 가야 할까 고민하며 짐을 싸려던 찰나, 놀리듯이 떨어졌어요. 그렇게 한 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전 주엔 약 일 년 반 동안 성실히 일해주던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두었습니다. 학교가 있는 서울로 가서 자취를 한대요. 새로운 친구들을 뽑고 가르치고 가게를 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어요.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편지가 늦은 이유를 구구절절 적고 있어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해서요.


파편이 삶의 숙명이라니, 너무 멋진 문장이에요! 언니가 적어주신 문장을 저는 이번에도 여러 번 읽고 곱씹었답니다. 처한 상황은 다르겠지만 찢어지고 쪼개지는 모습은 백은선 시인도 언니도 저도 모두 같네요. 파편의 요정으로부터 온 편지를 n번째 읽고 나니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지난 2주 간 급박했던 상황이 대강 정리되고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독서조차 하지 못했더라고요. 언니는 독서가 쉼이었으면 할 때 어떤 책을 읽나요? 저는 감정에 푹 젖어서 울고 웃을 수 있는 장편 소설들을 읽습니다. 이번 독서는 간절히 쉼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책장 앞에서 소설책들을 훑다가 저의 '인생 소설'을 집었습니다.

진부한 질문이겠으나, 언니의 인생 소설은 무엇인가요? 제 기준으로 인생 소설은 읽고 또 읽고,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는 중에도 때마다 찾아 읽는 소설이에요. 저에겐 그런 소설이 한 권 있는데요. 바로 신경숙 작가의 『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독서의 시작부터 끝까지 눈물이 줄줄 흐르는 책이죠.

제가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나이는 18세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요. 쉬는 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갑자기 끅끅 우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쳐다보니, 그 짧은 10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읽으려고 이 책을 손에 들고 흐느끼고 있더라고요. 책을 좋아하는, 센티한 여고생이 또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죠. 친구 덕에 처음 알게 된 이 소설을 읽고 저 또한 끅끅 끅끅 했답니다. 그 이후 이 책은 제 책장에 잘 자리 잡았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08년 11월에 초판 1쇄가 나왔어요. 하복을 입고 있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저는 2009년 여름쯤 첫 독을 했네요. 그때는 출간된 지 약 6개월 된, 빳빳한 새 책이었는데 지금은 얼룩도 많고 종이 색도 바래있습니다. 책장에 묻어두었다가 대학생이 되고, 대학원생이 되고, 월급을 받으면서 제 환경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몇 년씩 텀을 두고 캐내어 다시 읽곤 하는 책이라 그렇습니다. 언제 읽어도 슬프고 언제 읽어도 묵직하고 언제 읽어도 대단한 소설이에요.



이 책의 '엄마'는 1938년 7월 24일 생 박소녀씨입니다. 90년대 초반 생인 저의 양가 할머니들이 30년대 후반생이신 걸 생각하면, 박소녀씨는 사실 저에게는 엄마보다는 할머니에 가까워요. 생각해 보면 책에서 그리고 있는 모습이 나의 엄마를 넘어 엄마의 엄마와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박소녀씨는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두었어요.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둘째 아들의 집으로 가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서울역에서 실종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해요.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실종된 엄마를 찾는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 엄마를 부탁해』는 총 4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의 중심인물은 셋째이자 큰 딸인 '지헌'이고요. 2장의 중심인물은 첫째이자 장남인 '형철'이고, 3장의 중심인물은 박소녀씨의 남편입니다. 4장은 박소녀씨가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자신의 넷째 아이이자 작은 딸을 바라보며 털어놓는 이야기와 마음속에 숨겨둔 이를 바라보며 털어놓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우리 엄마에게 첫째 아이이자, 첫 딸이고,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딸이기도 해요. 그래서 3장을 제외한 모든 장에서, 저는 박소녀씨의 첫째가 되었다가 셋째가 되었다가 넷째가 되었습니다. 눈물 마를 틈이 없었단 뜻이죠.


그동안은 딸의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읽어왔는데, 출산 이후 이 책을 읽는 저에게 '엄마'라는 시각이 추가되었어요. 이번에 독서를 하며 제 눈에 새롭게 들어왔던 건 '무엇이든 키워내는' 박소녀씨,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 박소녀씨는 당시 많은 엄마들이 그랬듯 모든 살림을 자신의 손으로 해냅니다.

엄마는 재봉질을 했고, 뜨개질을 했으며 쉴 새 없이 밭을 가꾸었다. 비어 있는 적이 없던 엄마의 밭. 봄이면 밭고랑엔 감자씨를 모종하고 상추와 쑥갓과 아욱과 부추 씨를 뿌리고, 고추를 심고, 옥수수씨를 묻어두었다. 담장 밑엔 호박구덩이를 파고 논두렁엔 콩을 심었다. 엄마 곁엔 언제나 깨가 자라고 뽕잎이 자라고 오이가 자랐다. p.69

박소녀씨는 다섯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밭과 논에 온갖 종류의 작물을 키웁니다. 동물들도 어찌나 잘 키우는지, 박소녀씨가 키운 강아지가 너무 잘 자라 새끼를 아홉 마리나 낳아요. 박소녀씨는 지헌의 손을 잡고 강아지들을 광주리에 담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팝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지헌에게 책을 사줍니다. 지헌의 뱃속을 채우고, 머리와 마음을 채우며 키워낸 거죠. 다섯 자녀가 다 성인이 되어 둥지를 떠난 이후에는 '소망원'이라는 고아원의 아이들을 돌봅니다. 구석구석 쓸고 닦고 정성껏 아이들을 씻깁니다. 실종될 즈음에는, 동네 노인에게 맡겨진 두 아이에게 매일 밥을 해서 먹였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못 먹은 것을 보고 한번 데리고 와 밥을 먹인 이후로, 두 아이는 매일 박소녀씨의 집에 와 놀다가 밥을 먹어요. 간식까지 먹습니다. 박소녀씨의 평생은 '키워내는' 삶인 거예요.


책을 읽는 내내 '키워내는' 박소녀씨의 모습은 '나의 엄마'를 떠올리게 했어요. 박소녀씨보다 하나 적지만, 아이 넷을 키워낸 저희 엄마도 일평생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키워내는 분입니다. 막내가 성인이 된 이후 언제부턴가 친정에 갈 때면 화분이 있어요. 엄마는 나팔꽃이 피면 "예쁘지?" 하며 사진을 찍어 보냅니다. 추운 겨울, 비닐에 꽁꽁 감싸 아파트 건물 틈에 넣어두었던 작은 동백나무가 잘 견뎌 다시 꽃을 피웠을 때 정말 기뻐했어요. 언젠가는 꽃 네 송이가 피었는데 그 네 송이를 저와 동생들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가장 먼저 핀 꽃이 저고, 이후 핀 꽃들이 차례차례 동생들이래요. 어떻게 딱 네 송이가 피었을까요? 엄마에게는 그 숫자마저 몽글몽글하겠죠? 정말 '키워내는 삶' 그 자체예요.

모전여전이라고, 엄마의 이런 모습은 외할머니로부터 왔습니다. 전에도, 지금도, 외할머니의 집에는 화분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저에게도 이어지는 듯해요. 본래 저는 식물을 키우는데 재능이 정말 없습니다. 키우기 쉽다는 선인장도 여럿 보냈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고 카페라는 공간을 운영하며 피할 수 없이 식물들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던 식물들이 축 늘어진 걸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물을 주고 볕을 쐬어주고 환기를 해주니 잎이 바짝 살아나요.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날 좋은 날엔 밖에 내어두고, 영양제를 사서 뿌려주고, 저의 딸인 나무와 함께 물을 주는 일련의 과정이 생각보다 큰 기쁨이에요. 새 잎이 돋아나고, 쑥쑥 자라 분갈이를 하거나 자구 분리를 해줄 때면 엄청 뿌듯합니다. 엄마와 할머니에 비하면 한참 하수인 저도 이제 슬슬 '키워내는 기쁨'을 느끼게 된 걸까요?


엄마들이 무엇이든 키워내는 일에 달인이 되는 것을 보면, 역시나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인가 봐요. 그래서 언니와 제가 이렇게나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겠죠. 울고 웃으며 하루하루 작은 아기를 키웠더니 어느새 뛰어다니고 쉴 새 없이 재잘거리고 있네요.

나무가 아팠던 지난주, 저는 내내 집에서 나무를 보았고 남편은 내내 가게를 보았어요. 새벽에는 로스팅을 하고, 오전에는 디저트를 굽고, 오후 내내 가게를 보다가 저녁이 되어 정리를 해야 하는데 너무 힘들었나 봐요. 힘들 수밖에요. 그래서 마감을 조금 미루고 노트북을 켜고 앉아 나무의 영상을 만들었데요. 2023년의 나무, 2024년의 나무를 영상으로 만들어 보냈더라고요. 열이 나는 나무에게 해열제를 먹여 재운뒤 남편이 보내준 영상을 보았습니다. 너무 귀엽고 예쁜데 너무 속상해서 펑펑 울었어요. 이렇게 작고 예쁜 아기에게, 나는 요즘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냈을까. 왜 더 기쁨으로 키우지 못하고 있을까. 정말 속상했습니다.

제가 사람 구실 정도는 제대로 하고 사는 것을 보면 엄마는 저를 꽤나 잘 키우신 것 같은데, 제가 나무를 엄마처럼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자식 넷을 열심히 키우고도 예쁘게 핀 꽃 네 송이에 자식들 이름을 붙여가며 행복해하는 엄마처럼, '키워내는 삶'의 고수가 될 수 있을까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는 엄마처럼은 못할 것 같아요. 역시나 박소녀씨의 작은 딸도 언니에게 쓰는 편지에서 저와 똑같이 말해요.

특히 엄마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는 그걸 모르겠어. 생각해봐.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 언니, 아무리 그래도 나는 엄마처럼 할 수 없어. 엄마를 잃어버리고 자주 생각했어. 나는 엄마에게 좋은 딸이었나? 나는 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내게 해준 것처럼 할 수 있나? 한 가지는 알아. 나는 엄마같이 못해. 할 수도 없어. p.260-261


현주언니.


박소녀씨의 가족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잊고 있던 엄마를 생각합니다. 내 삶에서 당연한 존재였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혼란과 슬픔이 박소녀씨의 자녀들에게서 고스란히 드러나요. 그 모습을 글로 읽으며 언젠가 엄마와 헤어질 날이 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습니다. 어쨌든 삶에는 끝이 있고 운이 좋게 늙음과 죽음이 순차적으로 온다면, 지금 아파서 힘든 외할머니 다음은 엄마일 것이고 그다음은 저일 것이고 그다음은 나무겠죠. 소중한 나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 그리고 나의 딸과 이 땅에서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거예요. 그때 혼란과 슬픔 대신, 보다 긍정적인 마음과 감정이려면 박소녀씨의 딸이 엄마를 잃어버린 후에야 하는 자문을 우리는 지금 해야 할 거예요. "나는 엄마에게 좋은 딸인가?" "나는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인가?"

어떤 날은 좋은 딸일 테고 어떤 날은 아닐 거예요. 어떤 날은 좋은 엄마일 테고 또 어떤 날은 아니겠죠. 그래도 대체로 좋은 딸이고 싶고 대체로 좋은 엄마이고 싶어요. 지금으로서는 그 마음이 최선인 듯합니다.


날이 많이 선선해졌어요.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불리지요.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키워낸 작물들을 추수할 시기가 오고 있어요. 움직이는 모든 것은 시시각각 자라나니 생각보다 키워내는 일은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흔한 일이네요. 흔하고도 중요한 일이요.

다가오는 주말도 저는 좋은 딸이길 꿈꾸며, 좋은 엄마이길 꿈꾸며 흔하디 흔한 키워내는 일에 조금 더 힘을 써볼까 합니다. 저의 열심으로 나무가 조금 더 살이 쪘으면 좋겠네요. 몸무게 정체기가 오래가고 있거든요. 박소녀씨처럼 직접 모든 작물과 동물들을 키워낼 수는 없지만, 제 나름대로의 열심으로 주어진 것들을 키워내며 언니의 다음 편지를 기다려볼게요.


현주언니, 언니와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평온하게 가을을 맞이하기를 기도하며, 이만 줄입니다.


2025년 9월 18일

지은 드림.



<우리를 지키는 편지> 매거진에 매주 현주와 지은이 책을 읽고 서로에게 편지를 써 업로드합니다. 앞선 편지, 앞으로의 편지가 궁금하신 분은 매거진을 눌러보실 수 있습니다. :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파편의 요정이 보내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