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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Aug 21. 2020

내 친구 K-장녀들에게

소풍 온 듯 가벼운 하루가 되기를


안녕. 'K-장녀'라고 불리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어쩌면 같은 환경을 공유하고 있을 나의 친구들.


상당히 아날로그한 나는 올해 초쯤 친구를 통해 'K-장녀'라는 말을 접했어. "우리 같은 K-장녀는"이라고 운을 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서둘러 검색해봤지. 그러다 한 기사를 보게 됐어. 'K-장녀'라는 신조어를 친절히 설명해주는데 단번에 느꼈어. 아, 내 얘기구나.


“온라인상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신조어 ‘K-장녀’. 이 유행어는 코리아(Korea)의 앞글자 ‘K’와 맏딸을 뜻하는 ‘장녀’의 합성어다. 주로 ‘지옥의 가부장제’를 견디며 살아온 여성들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지칭할 때 쓰인다. 쓸데없는 책임감, 심각한 겸손함, 습관화된 양보 등 “나 K-장녀야” 한 마디면 화자의 성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상징적 수식어이기도 하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051452011&code=960100#csidx703af02d6e3f9b2878b407132a8c11d


쓸데없는 책임감, 심각한 겸손함, 습관화된 양보. 기자 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정확히 내가 가진 세 가지 모습을 글자로 옮겨놨더라. 너희들은 어떤지 모르겠어. 너희들도 이 세 단어 앞에서 문득 스스로가 답답해지니?



나는 올해 초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어. 교회가 어마어마한 말썽을 부리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에 말하기 상당히 부끄럽지만 나는 교회에서 일하고 있어. 그동안 파트타임으로 일하다가 올해가 돼서야 진짜 '밥벌이'를 하기 시작한 거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지금의 교회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마음껏 하고 있어. 책을 보고,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고, QT책을 편집하는 일들을 해. 그래서 1월부터 지금까지 상당히 즐겁게 일하고 있어.


그럼에도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내 안에 있는 'K-장녀'같은 성격들이 스스로에게 너무 잘 보인다는 점이야. 쓸데없는 책임감, 심각한 겸손함, 습관화된 양보. 이 세 가지가 전부 몸에 배어있는 나는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할 때,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쓸데없이 무거운 경향이 있더라. 예를 들면 그런 거야. 나라는 사람의 한계는 분명히 정해져 있는데 쓸데없는 책임감으로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고, 이만하면 잘했다고 스스로 만족해도 될 텐데 굳이 못한 부분을 찾아서 괴로워하고, 내가 해놓고도 내가 했다고 떳떳이 말하지 못하고 스르르 뒤로 빠져버리고.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데, 제 나이에 맞는 능력은 갖춘 것 같은데 혹시나 실수할까 봐, 혹시나 빈틈이 있을까 봐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말들을 하고 있고. 어떻게든 다른 사람을 돕는 위치를 사수하고 그것으로 자기 위안을 얻고. 내가 나를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느낄 정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맞추고, 웃어넘기고. 눈치는 말로 해서 뭐해, 이미 만렙이지.


사실 나는 평소에 내가 장녀라는 것을 은근슬쩍 자랑하는 편이었어. 나는 동생이 세 명이야. 동생 셋을 둔 장녀라는 이미지가 사람들에게는 꽤나 좋은 인상을 심어주더라. 사실 그 인상에 근거가 없는 건 아니야. 나는 지나치게 책임감이 강하고 주변 사람들을 고려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편이니까. 그런 모습들이 좋은 이미지를 심는 경우가 대다수더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좋은 이미지를 얻으면 어쨌든 기분은 좋지.



너희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때때마다 떠올리는 문장이 있어? 나는 상당히 여러 개가 있는 편인데, 그중 하나가 'Do what you love!'라는 영어 문장이야.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 대학교 때 어디선가 이 문장을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 그때가 딱 진로를 두고 엄마랑 신경전을 벌이던 시기였거든.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는 나한테, 엄마는 계속 사회복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했어. 수입도 안정적인 게 역시 공무원만 한 직업이 없다고. 식구도 많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 집에는 아마 조금이라도 빨리 안정적으로 수입을 벌어들일 사람이 필요했을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내 앞날을 사서 걱정했겠지. 그 덕에 나는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김지영 씨의 언니인 김은영 씨에게 유독 마음이 갔던 것 같아. 결국 엄마의 말을 따라 교대에 갔던 그 김은영 씨.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도 말로는 "싫어, 안 해"라고 하면서 진지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까 고민했었거든.


그때 나는 너무 속상했어. 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는 물어보지도 않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에 네가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짧은 영어 문장을 봤던 거야.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다이어리에도 써두고, 스마트폰 메모에도 적어뒀어. 그리고 나는 저 문장을 붙잡고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해가고 있어. 물론 그 덕에 우리 둘째가 내가 했어야 할 빠른 취직을 하고 마음고생을 했지. 그러고 보면 참 서글퍼. 가정 안에서 적어도 누군가는 살림 밑천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게 큰 딸이 아니라면 또 다른 딸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그들이 살림 밑천이 되기를 거부했을 때 힘들어지는 사람은 엄마라는 사실이. 모두를 위해 양보하는 큰 딸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양보하지 않으려고 굳은 마음을 먹었을 때 피해를 받는 사람이 가정 안의 여자들이라는 사실이.



최근에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또 다른 문장을 하나 만났어. 그리고 지금도 매일 되뇌고 있어. 사실은 그 문장이 지금 내가 이 편지를 쓸 수 있도록 이끌었어. 그래서 그 이야기를 조금 해주고 싶어.


나는 낯도 많이 가리고, 어른들을 무서워하는 편이야. 혹시나 내가 저 어른에게 예의 없지는 않을지, 저 어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고민하다 보니 어른들을 대하는 게 많이 불편해. 물론 필요할 땐 업무용 웃음으로 싹싹하게 행동하기도 하지만. 그런데 아직 이십 대 후반인, 가장 막내인 내가 30-50대 어른들의 글을 수합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업무를 맡게 된 거야. 그것도 대다수가 남자인 어른들. 다들 알지? 목사라는 직업은 유독 여자 어른보다 남자 어른이 많다는 것. 눈치도 봐야 하고, 일도 잘 해내야 하고. 내 잘못이 아닌데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도대체 내가 왜 이럴까’라는 고민도 잠시 했던 것 같아.


그러다 한 번 눈물이 터졌어. 남자 목사님, A 목사님과 내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런 말을 하시는 거야. "전도사님이 목사님들을 대하는 게 어려울 거라는 건 알아요."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울음을 못 참겠더라. 나는 몰랐는데 내가 적잖이 힘들었나 봐. 다들 바쁜걸 너무 잘 아니까, 요구해야 할 사항도 소심하게 제대로 말하지 못했어. 그냥 내가 조금 더 불편하더라도, 내가 글을 편집할 시간이 줄어들더라도 일일이 모든 사람에게 맞추고 배려하고 양보했어. 나는 그냥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마음이 넓은 사람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요구 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했을 때는 혼자 눈치를 잔뜩 보기도 했고. 그런데 죄송하지 않으면서도 죄송하다고 말하는,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는, 고맙지 않으면서도 고맙다고 말하는 내가 스스로 너무 힘들었나 봐.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혼자 사람은 없고 책만 가득한 곳으로 올라갔어. 아무도 없을 줄 알고 갔는데, 내가 평소에 잘 따르는 여자 목사님, B 목사님이 계셨어. 책을 고르는 중이셨던 것 같아. 일단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았는데 울음이 왈칵 터진 거야. 깜짝 놀라신 목사님이 내 어깨를 잠깐 토닥이시다가 이내 혼자 있을 수 있게 내려가 주시더라. 실컷 울고, 마음을 추스르고, (사실 내 잘못이 아닌데 혼난 기분이 들었던) 대화를 정리하며 업무도 마무리하고, 퇴근 시간이 됐어.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B 목사님이 가방을 들고나가시면서 내 손에 과자를 쥐어주시는 거야. 웃으면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가방에 넣어서 나왔어. 미처 몰랐는데 집에 가는 길에 보니 과자에 쪽지 하나가 붙어 있더라.

나는 그대가 좋아요. 소풍 온 듯 가볍게 ♬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쪽지에 나를 뼈 때린 문장이 있었어. 소풍 온 듯 가볍게. 이 문장을 읽는데 울컥했어. 도대체 소풍 온 듯 가볍게 일하는 게 뭐고, 소풍 온 듯 가볍게 사는 게 뭐지? 어떻게 일을 하고 삶을 사는데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나는 소풍 온 듯 가볍게 살아온 적이 없더라. 매 순간 치열하고 무겁고 고단했더라고. 좋은 딸, 좋은 사역자, 좋은 친구, 좋은 아내(혹은 여자 친구),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능력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모두를 위해 살다 보니 그랬나봐. 쓸데없는 책임감, 심각한 겸손함, 습관화된 양보. 기사에서 말한 이 세 가지 때문에 그동안 내가 무거운 삶을 살았던 것 같아. 쓸데없고, 심각하고, 습관화된 이것들로 인해서.


사실 나는 지금도 책임감이 과도해. 스스로에게 상처를 줄만큼 겸손한 척 나를 깎아내리고, 여전히 나보다 타인이 우선이야. 그런데 매일매일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있어. 소풍 온 듯이 가볍게, 즐겁게 일하고 놀고 살아보자고. 이 말이 내 마음을, 내 삶을 조금은 자유롭게 해 주더라. 일이 조금 틀어져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조금은 폐를 끼쳐도, 무능력하게 비쳐도 어느새 가볍게 넘기고 있더라. 스스로 "아, 내가 지금 과도하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구나" "과도하게 이 사람을 생각해주고 있구나" "이 정도의 말은 내가 해도 되겠구나"와 같은 생각도 하게 됐어. 나한테는 큰 발전이지. 소풍 온 듯 가볍게. 정말 소풍 온 듯 가벼워지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가벼움으로 향하는 길에 한 걸음은 내디딘 내가 대견해. 그래서 자꾸만 스스로를 돌아보다가, 문득 너희들이 생각났어.


나랑 똑같이 무거운 삶을 살고 있을 너희들. 작은 것 하나에도 힘들어하고 절절매고 끙끙대는데 괜찮다 여기고 넘기는 너희들. 모두에게 모범이 되려고 노력하는 너희들. 어디서든 인정받고 사랑받으려고 노력하는 너희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과도하게 품으려고 노력하는 너희들. 싫어도 싫다고 말 못 하고, 불편해도 불편하다고 말 못 하고,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 못 하는 너희들. 쓸데없이 책임감은 강하고 심각하게 겸손하고 습관적으로 오늘도 양보하고 있을 너희들. 스스로의 모습이 답답하고 힘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하고 버리지 못하는 너희들. 동생일을 내 일처럼 고민하고 잔소리하는 너희들. 엄마의 하나뿐인 대화 상대, 어쩌면 속풀이 대상일 너희들. 가족들에게 동료들에게 온통 희생하고 있을 너희들. '살림 밑천'이라 여겨지다 이제야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너희, 아니 우리들.


나를 조금은 가볍게 해 주었던, 또 다른 선배 장녀에게서 내가 전해 받은 이 문장이 오늘 하루는 너희들을 가볍게 해 줬으면 좋겠어. 내 친구, 수많은 K-장녀들. 도대체 어렵겠지만 단 하루 만이라도 소풍 온 듯 가벼운 마음과 기분으로 지내는 너희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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