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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Dec 06. 2021

글쓰기를 통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을 통해 돌아본 ‘나’와 ‘글쓰기’


2021년 한 해 읽었던 책 중 베스트를 꼽자면 주저 없이 정혜윤 작가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이다. 지난여름, 강릉으로 휴가를 가서 들렀던 동네 책방 <한낮의 바다>에서 사 온 책이었다. 쉬는 날 마음 편히 탁 트인 카페에 앉아서 맛있는 브런치를 시켜놓고 한 권을 다 읽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 단어를 빼고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단어가 있으며,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 같은 단어 몇 개”를 가슴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프롤로그부터 너무 좋았다. 정혜윤 작가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자기 고유의 단어와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단어와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켜켜이 쌓여가는 감정을 어찌할 줄 몰랐다.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인데도 찔끔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다양하고 복합적인 삶의 모습이 담긴 글을 읽다니, 그 하나로 올 한 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나에게 비단 감상적인 영향만 준 것은 아니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줄곧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구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좋아, 하며 감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구절이 내 머릿속에서 스펀지처럼 모든 생각을 빨아들여 버렸다. 지난 몇 달간 계속 같은 구절이, 같은 고민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 구절은 이렇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일부분이다. 나의 가치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가치와 같다. 내가 살리고 전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나다.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위고, 2021) p.19

프롤로그에 있던 이 구절이 내내 일상에 머물러 있었다. 근본적으로 해야만 하는 질문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얇고 꾸준하게 무엇인가를 쓰고 있기는 한데, 그렇다면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대체 무엇이지? 다작을 하는 작가들도 결국엔 같은 말을 다양한 모양의 글로 하는 것이라던데, 내가 삶을 통틀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지? 단순히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나이고, 그것에 내 가치가 있고, 심지어 내가 그것의 일부라는데, 지금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지?



바쁜 일상은 해야만 하는 고민을 미루는 좋은 핑계가 된다. 마음과 머리는 요동을 치지만 일상에서는 고요하게 해야 할 일을 착착해나갔다. 감히 답을 내릴 수가 없어 미루고 미루는 동안 두세 달이 지나갔다. 브런치에서는 계속 ‘꾸준함이 실력이 됩니다’ ‘작가님의 글을 60일 간 못 봤네요!’라고 친절하게 푸시 알람을 보내왔고, 지인들은 ‘요즘은 왜 글을 쓰지 않아?’라고 물어왔다. 가타부타 설명할 수가 없어 어설픈 웃음으로 넘기기를 여러 번, 올해가 가기 전에는 이 숙제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에 마음을 다잡았다.


2019년부터 써온 약 40여 편의 글을 찬찬히 읽어나가면서, 내가 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생각해보았다. 결혼을 준비하며 이곳저곳에서 치인 마음, 눈앞에서 누군가 나의 남편이 될 사람에게 피곤한 여자, 쓸모없는 여자와 결혼한다고 했던 말을 들으며 무너져 내렸던 마음을 어딘가로 내어놓기 위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시작했던 글쓰기였다. 글을 쓰는 시간 동안은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을 일도, 누군가에게 유용한 사람이 되어야 할 일도 없었다. 오롯이 ‘고유한 나’, 내가 느끼는 것, 내가 보는 것, 내가 관찰한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길게, 천천히 이어졌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나에게 글쓰기는 나를 돌보는 시간이다. ‘고유한 나’를 바꾸라는 끊임없는 요청들 사이에서 내가 유일하게 나를 지켜내는 시간이다. 마음 편히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말하고, 슬픈 감정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상처를 풀어내어 자가 치유하는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지금 나에게 글쓰기는 ‘고유한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그에 더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고유한 나’를 지키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본다. 마음 편히 내 세상을 살지 못하는 여성들, 말 그대로 반짝이는 시간을 끌려다니며 거저 보내는 청소년들, 다수가 원하는 방향과 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끌려가며 애쓰는 사람들. 그것은 그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내 모습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자신을 잃지 않을 만큼 강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고민과 앓는 소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로 존재하기를 위협하는 무수한 방해꾼들 앞에 맥없이 쓰러지는 처지이니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씩이나 해야, 겨우겨우 오늘 하루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내 안에서 발견하는 것도 서러운데, 가깝고 먼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때는 어쩐지 슬픔을 주체할 수 없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나도 ‘고유한 나’를 지켜가고, 당신도 ‘고유한 당신’을 지켰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것을 바라는 많은 목소리들, 강제로 나를 바꿔버리는 상황들 속에서 ‘나’를 잃지 말자는 이야기다. 글을 쓰기 위해 여러 메모를 해둔 노트를 쭉 읽어보니 더욱 명확해진다. ‘여성’으로서의 나, ‘한 개인’으로서의 나, ‘직업인’으로서의 나,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나, ‘누군가의 가족’으로서의 나 등등. 다양한 나의 정체성이 단순히 나를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본연의 알맹이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찾는 여정. 그 안에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이것이 현재까지 내가 찾은 답이다.


몇 년 후에는 전혀 다른 대답을 얻을지도 모른다. 삶은 다채롭기 때문이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시야가 넓어지겠지, 그만큼 더 깊이 있어지겠지, 그만큼 더 여유로운 마음이 되겠지, 그만큼 더 철이 들겠지, 그만큼 더 무르익은 글을 내놓겠지. 그러다 보면 20대 내내 관심이 있었던 ‘나’라는 대주제에서 조금은 방향이 틀어져 더욱 다른 이들을 돌보는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조금 이른 시기에 2021년의 글쓰기를 정리하며, 동시에 약 2년 동안의 글쓰기에 대해 강제로 중간점검을 했다. 너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어? 너는 누군가를 살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너는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어? 너의 일부인 그 이야기를 통해, 진짜 네가 누구인지 찾아가고 있어? 다양한 질문들이 맴돌다가 살며시 가라앉는다. 좋은 책에서 만날 좋은 구절들이 마구 휘저어서, 다시 떠오를 때까지는 이 질문들을 잠시 내버려 두고자 한다. 이제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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